강아지 털 길이에는 장모종, 단모종이 있다. 재롱은 굳이 따지자면 단모종에 가까운 강아지다. 재롱은 태어나서 미용을 한 번도 안 해본 듯 했다. 반듯하면서도 제각각으로 털이 빠르게 자라났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자하니 재롱이 미용을 해야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하나 하다가 시장 갈 때 종종 봤던,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있고 그 옆 간판에 ‘미용’이라고 적혀있는 펫샵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는 펫샵의 어두운 면을 몰랐다. 그저 투명한 유리창 넘어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꼬물대는 모양이 귀엽기만 했다. 유리창에는 ‘두드리지 마시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멈춰서 한없이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유리창은 얇았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에 반비례해 너무도 두툼한 벽이었다. 아마 그때 어렸던 나도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곳을 처음 들어간 건 재롱을 만나고서였다. 그 당시 미용 가격이 15,000원- 20,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사람 머리 자르는 비용이 10,000원도 하지 않았을 때여서 비교적 비싸게 느껴졌다. 그곳도 꽤 오래 다녔다. 재롱 미용을 핑계삼아 그 펫샵에 들어갈 땐 모델처럼, 인형처럼 예쁜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예쁘다고 다가서며 빤히 보면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창으로 달려들어 괜스레 미안해졌다. 강아지들이 원하는 걸 나는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아지들이 있는 쪽을 보지 않게 됐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당장이라도 달려들까봐. 괜한 희망만 주는 걸까봐.
재롱의 두번째 미용실은 동물병원이었다. 재롱이 어려서부터 다니던 동네 동물병원에 미용사가 새로 들어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기도 하고 펫샵보다 거리도 가까워서 재롱은 꽤나 오랫동안 그 미용사분에게 맡겨졌다. 털이 긴 강아지들이나 뽀글이 강아지들처럼 털로 기교를 부릴 순 없었으나 미용을 다녀오면 재롱은 말끔한 이대팔씨가 되어 돌아왔다.
재롱의 미용을 오랫동안 맡아줬던 미용사 쌤이 그만두고 병원에서는 더이상 미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재롱 나이가 7-8살 쯤 되었을 거다. 그떄만 해도 반려동물 미용만 전문으로 하는 곳은 많지는 않았고 주로 펫샵과 같이 하는 곳이 즐비했다.
그래서 근처에 또 그만그만한 펫샵으로 갔다. 그러다가 아는 분의 지인이 반려동물 미용샵을 오픈한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 거리도 가깝기에 재롱을 데리고 갔었다. 몸통 털도 털이지만 발바닥이나 귓속같은 위생 미용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늘 어딘가 20%씩 부족한 미용이었고 깔끔하지도, 그러다고 위생적이지도 못한 미용이었다. 실력이 충분하지 않은 초보라 하기엔 늘 들쑥날쑥했다.
그 미용실을 가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 날이 있었다. 미용실에 들어서자마자 노랫소리가 마치 클럽처럼 크게 들리는 거다. 미용샵에는 보호자나 강아지가 머무르고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작은 방처럼 미용 공간이 있었는데 닫혀있는 문틈사이로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안에는 이미 다른 강아지도 있었다. 사람인 내가 듣기에도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고 강아지들이 다 그렇다지만 재롱은 특히나 소리에 예민한 강아지였다. 그걸 알기에 내 마음은 더욱 부대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예약을 한 상태여서 위생미용만 부탁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