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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May 12. 2024

교도관생활 하면서 가슴 아팠던 사건 6

소년수용자 폭행사건

   2008년 우리 소에서 발생했던 소년수용자 폭행사건은 지금까지 신규직원들의 교욱자료로 활용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복싱부가 있었고 당시 소년교도소 복싱부는 각종 대회에서 좋은 실적을 거둬 언론에 자주 보도되었고 소장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복싱부 후원회에 호의적이었다. 영화 "주먹이 운다"가 소년교도소 복싱부에서 신인왕이 된 서철을 모델로 할 만큼 언론에서 복싱부를 미화하여 보도하고 있었으나 직원들은 복싱부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인왕에 오른 수용자들 중 최우수선수로 뽑힌 J의 사진을 소장실 벽에 걸어놓기도 하였으나 J는 출소 후 자신이 성폭행했던 피해자를 찾아가 자신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 성폭행하여 교도소에 다시 들어왔으나 그 사실도 모르는 소장은 J의 사진을 그대로 두어 직원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자동차정비공장에 출역하던 수용자 M이 만 23세에 도달하여 성인교도소로 이송을 보내야 했으나 복싱부에서 M을 헤비급 신인왕으로 키우겠다며 이송을 보내지 않았다. M이 직원들의 눈을 피해 다른 소년수들 위에 군림하며 괴롭히고 못된 짓을 하자 뜻있는 직원들이 M의 이송을 추진하였으나 세 번에 걸쳐 추진한 M의 이송이 모두 무산된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소장에게 다시 M을 이송 보내야 한다며 강력하게 요구하여 법무부에 이송신청을 하였으나 그 사이에 대형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자동차 정비담당직원은 M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자 M을 믿고 M에게 공장을 맡기다시피 했고 M이 나이 어린 수용자 K에게 가혹행위를 하여 K가 몸상태가 안 좋아 의료과에 가려고 하다 못 가게 만들었고 허벅지에 멍이 들자 멍을 제거한다며 PET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문질러 화상을 입게 하고 M이 직원들에게 신고를 하려 하면 가로막으며 못하게 하고 K의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지자 M이 겁을 먹고 K를 의료과에 가게 하였고 K는 곧바로 외부병원에 입원하였고 화상괴 타박상, 골절까지 발견되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사건으로 청에서 조사를 나왔고 4명의 직원이 징계를 받았으나 법무부 감사관실에서 추가 조사를 나와 몇 명이 직원이 징계를 더 받았고 보안과장까지 행정처분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는데 검사들로 구성된 법무부 감찰관실에서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감찰에 나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복싱후원회에 인천의 모 조직이 연루되었다는 소문과 M이 그 조직원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가장 확실한 건 소년수가 만 23세가 되면 성인교도소로 이송 보내야 한다는 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당시 보안행정 방호, 소방, 소파 담당을 하던 내 옆자리가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특정강력범 담당 자리라 나는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감찰관실 조사가 진행되던 날 소장 결재를 받기 위해 소장실 앞에 서있는데 부장검사가 소장실에서 나와 소장실에 들어가니 소장이 "부장검사가 M을 조직적으로 돌봐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윗선에서 돌봐주지 않는 한 저런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며 "누가 돌봐준 거 같냐?"라고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소장님! 부장검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장님께서 책임지라는 말 같습니다."라고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였으나 당시   고위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앞두고 있던 소장은 혼잣말로 "주의라도 하나 받으면 발령받기 힘든데....."라는 말을 하며 이 사건에 대해 자체조사를 해야겠다며 적임자를 추천해 달라는 말을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선에서 책임지겠다던 보안과장도 사건이 커지자 소장에게 자신이 책임질 부분만 책임지겠다는 말을 하였고 소장과 과장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진행되며 징계를 받을 직원들 수는 늘어만 갔다. 감찰관실에서 소내 전반에 대해 CC -TV를 돌려보며 감찰을 시작하였고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건에 대해서도 감찰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직원도 생겼고 30여 명의 직원이타기관으로 문책성 전출을 가게 되었고 중징계요구되었던 소장과 보안과장에 대한 행안부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직원들이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나 역시 행안부 조사관에게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청사 3층 조사관실에 들어가기 전 소장과 다른 과장, 총무과 직원들이 감시하듯 쳐다보는 눈총을 받으며 조사관실로 들어가니 조사관이 앞에 앉으라고 하더니 보안과장이 다른 직원들은 소장 눈치 보느라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를 불러 물어봐 달라는 말을 하였다며 사건에 대해 솔직히 말해 달라며 질문을 하였다. 나는 조사관에게 지금 문밖 조금 떨어진 곳에 소장을 비롯하여 측근들이 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리 다른 직원들도 부담 느껴서 제대로 진술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자 슬그머니 자신의 명함을 내 앞으로 밀어주며 "이해합니다. 오후에 아무 때라도 편한 시간에 전화 주십시오."라는 말을 하며 나가도 좋다고 말하였다. 5분도 안되어 밖으로 나오니 내가 무슨 말을 할까? 긴장했던 소장과 측근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오후 5시경 행안부 조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 말에 허심탄회하게 대답해 주었다.


  파면이나 해임 처분으로 기울던 보안과장은 정직 3월을 받았고 소장은 해임처분을 받았으나 국무총리표창 징계경감으로 정직 3월의 처분을 받았다.


책임져야 할 윗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부하직원들에게 떠넘겨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많은 직원들을 아프게 한 사건이었다.


  8년여의 세월이 흘러 대전교도소에서 유영철이 롤모델로 삼았다는 사형수 정두영 도주 미수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감사관중 한 명이 나와 잘 아는 사람이라 감사 진행사항에 대해 물어보니 대뜸 소장에 대해 안 좋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감사관실에 안 좋은 투서가 몇 건 들어와 지켜보고 있던 중 정두영 사건이 터지자 소장을 타깃으로 온 것이었는데 고위공무원까지 올라가 사람이 "강등되더라도 끝까지 가겠다."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들려 직원들이 많이 다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 사건에 비해 많은 직원들이 징계를 받고 타소로 전출되었고 정두영 담당직원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의정부교도소로 전출간 후 몇 년 안 되어 암으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년수 폭행사건 당시 담당직원과 사형수 정두영 출역공장 담당직원 모두 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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