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3년 임기의 기관 지출 업무 담당자로 발령받았다. 교도관의 업무가 아닌 생소한 회계 업무라 업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감사원에서 주관하는 회계담당자 교육을 신청하여 감사교육원이 있는 파주로 향하는데 "바른 감사 바른 나라"라는 문구가 보였다. 감사원 원훈이었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고 한승헌 변호사가 공모를 통해 감사원 원훈을 ‘바른 감사, 바른 나라’로 바꾸었고 국민의 눈으로 보고, 국민의 귀로 듣겠다는 다짐으로 눈과 귀의 형상을 본뜬 상징(로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 감사원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감사원 원훈이 내 가슴속 깊이 와닿은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기 부패했고 감사관들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감사를 받았지만 관행적인 비리를 대부분 못 본 척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1주일간 감사원 교육내용이 주로 회계담당자들의 비리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감사원에서는 감사사례를 통해 일선에서 행해지는 비리를 세세하게 다 알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시정하려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기관이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소에 복귀하여 관행적인 비리에서 벗어난 업무를 하려다 보니 기관장과 관련된 예산 등에서 마찰이 생겼는데 "그런 사안으로 감사받은 적도 없고 정기 감사나 수시 감사 때에도 안 보는데 융통성 없이 왜 그러느냐?"며 질책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 사람 말처럼 감사관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나중에 상관으로 모시게 될지도 모를 상급자들에게 엄격한 감사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감사관이라도 그랬을 것 같다.
감사와 관련하여 가장 황당했던 일은 보안과에 들어와서 소방담당을 할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매년 소방전문업체에 의뢰해 소방안전점검을 실시하는데 소방안전점검을 앞두고 관련 서류를 살펴보니 2년 전 점검 결과 내용이 1년 전 점검 결과내용과 점검연도만 틀리고 똑같았다. 어찌 된 일인지 주무과 전기 책임자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고 웃으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었다. 내 역할은 화재예방 교육과 소방훈련을 담당하는 것이었고 점검자를 안내하고 수용자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점검자들에게 "점검을 대충 하고 서류상 이상 없는 것으로 보고한다면 최근 대형화재사건이 발생한 곳과 같이 부실 점검 책임으로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자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세세하게 적어 그대로 보고하였다.
어이없었던 것은 화재수신반이 오작동이 많다는 이유로 수신반에서 각 개소로 연결된 전선을 통째로 끊어 뒤쪽 깊숙한 곳에 안 보이도록 숨겨 놓은 것이었다. 우리 소 전기책임자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설, 전기 부분 감사를 그와 같은 기술직 계원들이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이 사람과 관련된 부분은 지적을 하지 않았고 지적을 하더라도 아주 경미한 처분에 그치기 때문에 상급기관 감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서운한 감정을 표시했지만 나는 감사관들에게 보고하기 전에 똑바로 근무하라는 말을 하였고 얼마 후 법무부 종합감사 때 소방과 관련 문제점이나 애로사항을 얘기하라는 감사관의 말에 있는 그대로 말했더니 감사관이 내용을 확인해 보더니 어이없어하며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내가 이 자식을 반드시 징계를 먹이겠다."며 확인서를 받아갔지만 결과는 경미한 처분에 그치고 말았다.
"국가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 줘도 못 먹나?" 이 말은 회계담당자 교육 때 K교도소 회계담당이 연말에 남는 예산을 반납했다가 심하게 질책을 받았고 배정된 예산은 반드시 다 사용하라며 상급기관 예산 사무관이 한 말이었다.
최근에 "대통령 온다고 시멘트 포장하더니 결국 1시간 쓰고 철거 충청남도가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충남 공공임대주택 기공식(착공식) 행사를 위해 최소 수억 원을 들여 축구경기장 절반 크기의 면적에 콘크리트를 깔고, 수천 평 공간에 파쇄석을 실어다 다지는 한편, 1km에 이르는 차단막을 설치하는 일회용 공사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행사가 끝난 후 유효기간 1시간짜리 시설물들은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다."라는 언론보도를 보고 또 20%의 성공 확률로 몇천억을 날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공사를 벌인다는 기사를 보며 한심한 나라, 예산 낭비꾼, 사기꾼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수억, 수백억의 혈세를 낭비해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감사원이나 각부처 감사관실에서도 감사를 하지 않는다.
국가예산을 낭비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때문에 국가기관의 기관장들이나 예산실무자들이 각종 공사를 벌인다. 멀쩡한 사무실, 휴게실 리모델링, 멀쩡한 사무용품 교체 등 심지어는 시멘트 복도 바닥에 2억을 들여 우레탄을 까는 것도 보았다. 자기 돈이었다면 자신의 집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전임 기관장이 수억을 들여 설치한 것을 후임 기관장이 필요 없는 것이라며 철거하고 다른 것을 설치하는 사례도 보았다. 수천만 원을 들여 만든 것을 몇 년 안 가서 철거하고 본부 회계담당자들이 임기를 마치고 일선기관에 오면 인심 쓰듯 몇천, 몇억씩 예산을 받아 공사를 벌이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바른 감사가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성역 없는 바른 ㅇㅇ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15년 전 중국교정시설 시찰 갔을 때 버스를 타고 이동 중 조선족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어느 도시를 지날 때 이 도시의 시장이 정치를 잘하고 좋은 정책을 많이 펼쳐서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고 중앙정부로부터 신뢰받는 유능한 사람이었는데 몇 년 후 초심을 않고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축재한 것이 들통나서 사형당했다는 말을 하자 버스 안에 탔던 일행들이 중국이 이런 건 잘한다며 우리나라도 고위층들의 비리를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 가이드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