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은 달리 했지만 역대 정권마다 공직사회는 혁신, 불합리한 관행 개선, 불필요한 일이나 절차 줄이기 등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오랜 관행, 고질적인 병폐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판사들의 권위 때문인지 혁신, 불합리한 관행 개선 등의 물결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던 것 같다.
교도관 생활 중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유치집행지휘된 수용자가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수용자를 데리고 법원에 간 적이 많은데 관할법원이 수용기관과 멀리 떨어진 곳일지라도 교도관 3명이 수용자를 호송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 와야 한다. 그런데 정식재판은 경미한 재판이라 수용자들이 굳이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출석한다 해도 몇 마디 짧은 대화로 몇 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상재판이나 관할이전 등의 절차를 도입하면 교도관들이 몇 시간 동안 수용자를 데리고 왔다 갔다 하며 국가예산 낭비할 필요 없는데 왜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갔고 개선할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현직에 있을 때 나를 포함한 3명의 교도관이 수용자 한 명을 호송차에 태우고 2시간여를 달려 법원에 도착하여 수용자를 데리고 법정에 들어서 수용자를 지정석에 앉히니 재판장이 수용자에게 "수용되어 있는 기관 쪽 법원에 다른 사건이 있는데 병합시킬까요?"라고 물어보았고 수용자가 "예"하고 대답하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재판이 끝났다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법원 직원이 교도관을 통해 해당 수용자에게 병합시켜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어보게 하여 통보해주게 하면 굳이 출석하지 않아도 될 재판이었다.
정식재판 청구한 수용자들을 데리고 가면 거의 이런 식의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 사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용자들을 데리고 관외출정을 가서 우리 순서를 기다리며 법정 호실 문 앞에 시간대별로 적혀있는 사건 목록을 보다 보면 저렇게 많은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재판 전에 읽어보지도 못할 분량의 사건들을 처리하는 판사들이 존경스럽기보다는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개선하지 않고 자신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불합리함 속의 불편을 겪게 만드는 법원행정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십여 년 전 법원행정과 관련된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매우 좋은 내용이라고 곧바로 받아들여 시행할 것처럼 했는데 결론은 법원은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이라 정부 제안의 영역 밖이라는 것이었다. 치외법권 지역인 것이다.
수십 년 전부터 "판사는 미뤄 조진다."말이 나왔건만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