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Jun 08. 2024

국가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

  20여 년 전 교정기관 회계실무자 교육 때 본부 사무관이 연말에 본부에서 보낸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불용처리한 K교도소 회계담당을 질책하며 "국가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라는 말을 하였다. 배정된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반납하면 그만큼 내년 예산이 삭감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모시키라는 거였고 나와 동기인 K교도소 회계담당 P는 12월 중순 몇백만 원의 예산을 갑자기 내려보내 사용하라면 남은 며칠 동안 편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며 집행을 거부한 것이다. P는 대쪽 같은 성격으로 몇 달 후 나를 본부 사무관에게 심하게 질책받게 만들었고 말다툼까지 하게 하여 징계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해마다 10월이면 공공요금 예산이 바닥나 국가기관마다 연체료를 내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기관만 해도 천만 원이 넘는 연체료가 발생하였고 교정기관 전체 몇억, 경찰청 등 전 국가기관에서 수백억 원의 연체료를 물어내어 언론에도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첫 번째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에서 예비비를 10월 중순까지 내려보내는 것이었고 이런 문제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제안으로 접수시켰는데 교정기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 사무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 예비비를 제때 내려 보내줄 테니 그 제안을 삭제해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예비비나 제때 내려 보내라며 거절한 일이 있었다.

  예비비를 받지 않고 연체료를 발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건 편법이었다. 국가예산은 반드시 지정된 항목 안에서만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항목에 10억 이상의 예산이 있어도 공공요금 항목에 예산이 없으면 집행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나는 10억이 남아 있는 항목에서 공공요금 1억을 집행하고 11월에 예비비가 내려오면 원인행위 정정으로 바로 잡는 것이었다. 나는 공공요금 연체료 걱정을 하는 K교도소 회계담당 P에게 알려 주었다. P는 내 말대로 집행하고 싶었지만 원칙이 아니기에 혹시나 탈이 날까 봐 본부 예산 사무관 K에게 전화를 걸어 "내 얘기를 하며 이렇게 해도 되냐?"라고 물어보았고 본부 사무관 K는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한 후 내게 전화를 걸어 왜 법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느냐? 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자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인지 더 화를 내었다. 나는 "사무관님! 만약에 사무관님 댁에 공공요금 연체료가 발생할 상황에 처해있는데 한 달 후 공공요금 낼 돈이 들어오고 통장에 두 달 후 사용할 돈, 공공요금의 10배에 해당하는 돈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돈으로 공공요금 안 내고 연체료 몇백은 내실 건가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K사무관이 당신은 법을 위반했다며 더 큰소리로 나를 질책했다. 나는 편법이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징계감이라고 말하며 기획예산처 정사무관에게 전화해서 무슨 얘기를 했냐? 며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전화를 한 게 아니고 정사무관이 내게 전화를 해서 제안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말하자 계속 큰소리로 나를 질책하기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잠시 후 과장이 나를 부르기에 갔더니 "본부 K사무관이 너 징계한다는데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라고 물어보기에 난 잘못한 거 없는데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에 전화를 끊었다고 말한 후 회계업무를 그만두고 보안과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과장이 그러지 말고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사과할 마음이 없었으나 결재받기 위해 과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사과했냐? 고 물어보기에 1주일이 지난 후 K사무관에게 사과메일을 보냈고 K과장도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좋은데 법을 준수하는 것이 좋겠다며 소리 질러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최근에 국가부채가 2439조 원이라는 언론보도를 접하며 허투루 사용되는 국가예산만 절감해도 해마다 몇조 원은 절약할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은 연금개혁 등 얘기를 많이 하는데 회계담당을 하며 눈먼 돈을 많이 본 나는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예산만 없애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국가기구 축소 및 폐지, 특수활동비, 기관장 판공비, 각종 보조금 등 삭감, 배정된 예산을 어떻게든 소비하려고 쓸데없는 일들을 벌이고 연말이면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으려고 멀쩡한 아스팔트를 파헤치고 다시 까는 등 불필요한 공사 등만 통제하여도 엄청난 예산이 절감될 것이다.


  내가 겪은 역대 정권중 국가재정을 걱정하며 긴축재정을 얘기한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다. 임기초 방만한 재정을 통제하여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고 긴축재정을 하겠다고 말하여 여성대통령이라 그런지 거품을 빼고 제대로 하려나보다 잔뜩 기대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만 안겨준 채 역대 정부와 같은 길을 걸어갔다.

  대표적인 게 예산 조기 집행이다. 기획재정부에서 해마다 국가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예산은 조기에 집행할 것을 독려하며 조기집행 실적을 보고하라고 하는데 나는 이를 조삼모사 정책, 비리 유발 정책이라고 혹평한다.

  정해진 예산을 조기집행하면 하반기 경제는 어떻게 될까?

  무리하게 조기집행 하려다 보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부실공사를 하기 쉽고 심지어는 하반기에 실시할 공사대금을 미리 지급하기도 한다.


  기획재정부 등 예산 관련 부처에서는 국가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방만한 예산 집행에 대한 통제 및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 예산 가지고 위세 부리며 장난치지 말고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본부 예산부서에 있던 사람들이 일선 기관에 오면 예정에 없던 공사를 벌이며 수억, 수천의 예산이 배정된다. 국가 돈은 먼저 보는 게 임자라는 말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그런 사례들이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빚더미에서 벗어날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보여주기 정책이 나를 한숨짓게 한다.


십여 년 전 어느 정치인이

"우리나라는 윗 놈들만 잘하면 돼

온갖 못된 짓은 윗놈돌이 다 저지르고

국민들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국민들에게 말할 자격 없어

지들만 잘하면 돼

국민들은 잘하고 있어"라며

열변을 토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는데 최근에 이 대목이 들어있는 연설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일들에 신경 끄고 살고 싶은데 예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글을 쓰게 만든다.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바른 감사 바른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