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난 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며 열대야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향인 건은 아침에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며 오이, 가지, 옥수수, 고추, 깨, 토마토 등 농작물, 꽃, 과일나무들을 보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농부들의 부지런함으로 인해 나 역시 평온한 마음이 되고 하루라도 안 나가면 내가 답답할 지경인데 고맙게도 아내가 시간이 되면 빨리 나가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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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오후 들어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세를 보여 오후에도 3시부터 2시간가량 드라이브롤 하기 시작했는데 복숭아, 포도, 사과, 호도 등이 달려있는 과일나무가 있는 곳, 참깨단 세워 말리는 곳, 빨간 고추를 넓게 펼쳐 말리는 곳을 천천히 지나는데 아내가 "사과다~ 포도 먹고 싶다 ~ 고추 말리고 있네~ 마늘 매달아 놓았네 ~ 등 말을 하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저녁식사 후 약 먹기를 거부하여 좋아하는 과일 속에 넣어주는데 요즈음은 과일을 안 먹으려 해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밤새 잠을 안 자고 중얼거리며 큰소리치며 화를 내며 자신의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는 등 증세가 심해져 불안하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혼자 중얼거리며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갑자기 화를 내며 웃기도 하고 다음날엔 슬피 울기도 하고..... 미친 듯이 웃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이유 없이 종일 소리 내어 웃는 날에 불안감이 밀려온다. 다음날 여지없이 아내의 상태가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아내의 뇌 속에는 두 사람 이상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뇌에서 정상적인 아내가 나오도록 피에로가 되어야 한다. 있지도 않은 자전거가 없어졌다는 등 말을 몇 시간 동안 반복하며 이상한 말을 계속하면 나는 아내에게서 다른 사람이 나오게 하기 위해 아내를 칭찬하며 듣기 좋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데 내 감정조절이 잘 안 될 땐 아내가 이상한 말을 몇 시간이고 반복하며 집요하게 나를 압박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내가 과격하게 반응하며 이상행동을 하며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 내 인내의 한계가 드러나면 힘이 쭉 빠지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결단을 내려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다 다시 피에로가 되고 다행히도 요즈음 아내 속 여러 사람의 모습이 오럐가지는 않는다. 내가 지칠만 하면 다시 돌아오곤 한다.
내 안에도 괴물이 들어 있는 듯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내오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내게 고생 많다. 대단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가족요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더한 분들이 많다. 며칠 전 TV에서 어느 무명여가수는 지체장애 언니와 치매 어머니를 함께 돌보는데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식사를 차려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는데 언니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무명여가수에게 짜증을 내는데 언니를 달래며 화장실에 데려가 씻기고 어머니도 돌보는데 언니가 웃으며 "엄마가 나보고 엄마보다 하루 일찍 죽으라고 했는데 엄마가 저렇게 됐다."며 눈물을 흘리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도 울고 무명여가수도 우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다.
치매가족을 돌보는 TV 프로가 나오면 얼른 채널을 돌리는데 아마도 50은 된 것 같은데 그 나이에 언니와 어머니 둘을 돌보는 여가수를 보며 어떻게 둘을 돌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채널을 돌리지 않고 봤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아내의 친지 한분이 내게 아내의 상태를 물어보더니 "자네도 자네 인생 살아야지? 자네가 아내를 병원이나 시설에 보내도 누구도 탓할 수 없어 눈치 보지 말게 "라는 말을 하는데 여러 생각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여러 생각이 밀려올 때면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나? 아내의 상태에 따라 출렁거리는 내 뇌 속의 괴물들도 여러 모습으로 시시때때로 바뀌고 있다.
나라도 건강해서 아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내일 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살자는 것이 생각의 끝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