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사람이 수중에 현금 4천만 원이 없냐고?
‘금수저’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아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사람이 수중에 현금 4천만 원이 없냐?”
그 사람은 집안이 꽤 부유해 공부만 하다가 어울리지 않게 건축업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집안이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의 교사직에 몸담은 지도 몇 년 됐다. 교사직이 먼저였기에 건축업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왜냐고?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난 아직도 그 사람이 왜 그 일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꽤나 규모가 커졌지만 초창기에는 분양 자체가 힘들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 사람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전혀 없던 선입견 하나가 생겼다.
‘이 사람도 어쩔 수 없는 금수저구나..’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재벌 2세나 3세 정도 되는 사람들이 대학에 가기 전까지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에 분류되어 다른 사람들의 삶은 구경조차 못 해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처럼 금수저가 아닌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왜? 라는 한 음절짜리 단어 뒤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숨어 있다. 왜 그렇게 살고 있지?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노력을 안 하지? 공부를 안 하지? 대비를 안했을까?
자기에게는 당연히 있는 현금 4천만 원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출신 성분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다.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난 당연히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배울 만큼 배우고 책도 많이 읽었을 것 같은 사람이 말이라도 생각을 하고 뱉어야 되는 거 아닌가? 웃긴 건 그 사람은 우리 집안의 사정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우리 집은 자식이 일 년 짜리 교환학생을 가는데 있어야 하는 계좌의 3천만 원 때문에 그 부모가 부랴부랴 빌려서 입금을 했다가 다시 돌려줘야 하는 웃기지만 슬픈 그런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은 그런 보통의 서민이다. 중산층 정도 되면, 그래 4천만 원 정도야 어떻게 부지런히 모은 예금으로 퉁친다 하자.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중산층 보다는 서민이 많을 것이다. 훨씬. 확신하는 것 하나는 물질적으로는 중산층이 많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은 서민일거라는 거다. 떠안고 있는 빚이 어마어마하니까. 집이며 자동차며 갖고 있는 것들의 대다수는 ‘내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4천만 원 운운하는 그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금수저였다. 보통 사람, 서민은 4천만 원은커녕 몇 백만 원만 써야 할 일이 생겨도 신경이 곤두서는 비상상황이다.
그 다음부터 그 사람과 조금 멀어졌다. 그 전부터 그리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었고 친밀감이 진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뭔가 벽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가족들을 생각하면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기도 싫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볼일도 없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나?”
다 알겠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어느 금수저가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