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이발사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유독 최근 일 이년 사이에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 것이다.
이 영화는 박정희의 집권 직전부터 시작해서 그가 죽고 난후 전두환이 집권한 직후까지를 그린다. 물론 전직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다. 그건 배경일 뿐.
이발사가 주인공이다. 우연히 청와대에서 일하게 된 대통령 직속 이발사와 그 가족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말 한마디만 잘 못해도 한밤중에 쥐도 새로 모르게 잡혀간다던 시절의 이야기.
하지만 엄연히 있었던 일들이다. 영화 속 무슨 바이러스와 설사에 관한 에피소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 불순분자를 색출해내겠다는, 그래서 대통령에게 이쁨을 받겠다는 당시 권력기관이 자행한 그와 비슷한 일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옛날을 살아온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자신들이 민주화 투쟁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 만들어놓은 것처럼 술 취해서 떠들어대는 그런 모습들.. 내 덕분에 니들이 이만큼이라도 사는 거다, 라며..
참 듣기도 보기도 싫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랬다.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든 지금도 그런 내 입장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그건 어차피 자신들이 겪어내야 할 시대였으니까. 그들보다 전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항일 투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 또 힘들다. 딱 자신이 체감하는 만큼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류의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할 것 같다. 기록적인 의미로라도. 그 일을 실제로 겪었던 사람의 증언보다도 기록이, 서류나 사진 또는 영상물이 더 후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
어른들 가운데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다.
“그래도 박정희 때가 참 좋았지..”
어렵지 않게 듣는 말이다. 그때 경제 발전도 많이 됐다면서.
요즘 사는 게 하도 힘들다, 힘들다, 하니까 정말 예전에는 어땠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과연 박정희 때는 참 좋았는지. 그때는 열심히만 살면 희망이라는 게 보이는 삶을 살았는지.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군사력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통해 잡은 정권과 십년도 훨씬 넘게 이어져간 독재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나누어진다. 시간이 더 흐른 가까운 미래에 그것이 역사가 된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나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닌가 보다. 지난 정권에 대해 비꼬인 감정을 영화 속에 여지없이 풀어놓았다. 박정희에 대해서도.
박정희가 측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일본말로 뭔가를 할 때, 자신이 일본군관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때.. 그것 말고도 디테일한 비꼬임이 여기저기 있었던 것 같다. 시대물 하면 빠지지 않는 월남 참전 용사의 비극은 배우 류승수의 잘려서 의수가 끼워진 왼쪽 손목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다시 봤던 포레스트 검프와 이 영화가 비슷한 면이 꽤 많은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시대를 그려낸다는 점이. 아직까지 꽤나 직업의식에 충실한 예술가들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