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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칠순

며느리가 생각하는 시어머니

by 한박사

칠순을 맞이하였건만 어머니에게 어떤 큰 이벤트를 해드리진 못한다. 암에 걸린 시아버지 때문에, 그리고 지난주 돌아가신 시외할머니 때문에… 작년 친정엄마의 칠순의 경우에는 온 가족이 모여 시끌벅적한 1박 2일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시어머니의 팔자가 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결혼한 지 약 8년이 되었으니 우리 시어머니와의 인연도 대략 그 정도가 된 셈이다. 그 세월 동안 크게 고부간의 갈등을 느끼지도 않고 살아왔으니, 나와 어머니 간에는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었기에 그럴 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주 큰 부분에서 어머니와 나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어딘가 비관적이라면, 나는 낙관적인 편이었다. 어머니의 비관주의, 혹은 염세주의는 어머니에 의하면 집안 내력(부계쪽)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평생을 교직에 계시면서도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고, 늘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시면서도 가족들의 됨됨이나 성취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더 먼저 보는 습성이 있었다. 우리 친정엄마 같았으면 그럼 엄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남을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냐고 솔직하게 얘기할 텐데, 고부간에는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 같아서 굳이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가 좋았던 것은, 시어머니의 어떤 섬세함이라던지 소녀 같은 청승맞음에 나 역시 감응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계절의 아름다움을 기뻐한다든지, 꽃을 피운 화초를 보고 보람을 느끼거나 하는 그런 낭만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무덤덤한 시누이보다 나와 훨씬 더 길게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겐 나보다 더 앞서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어떤 대상에 대한 무한한 희생과 사랑을 자처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상은 대체로 자식과 남편이었지만, 길거리의 불우한 사람들 내지 길냥이에게도 향하곤 했다. 친정엄마의 자기애를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에겐 자기애가 거의 없는 듯 보였다. 그러기엔 모든 마음이 외부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시어머니와 같은 자기희생과 이타주의는 내 평생을 살아도 흉내 내는 것조차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가끔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곤 하셨다. 왜 더 열심히 살지 않느냐고, 왜 더 성취하지 못하냐고, 내가 이렇게 희생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밖에 못 하느냐고, 그렇게 남편과 자식들이 늘 성에 안 찬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셨다.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더 그렇게 가감 없이 말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선지 남편이나 시누이는 자신의 어머니와 길게 대화하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친정부모와도 어떤 애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자식 관계에도 이어지는 불운을 갖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와 장손에겐 꽤나 우호적이고, 편파적이기까지 한 애정을 바치곤 했으니 그것은 나름 다행이랄까. 그러고 보면 시어머니는 드라마 속 어떤 인물보다 입체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성향들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튼 시어머니의 지난 70년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기쁨보다는 비애가 더 많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전혀 그게 사실이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어머니에겐 큰 사고나 잘못 없이 40년을 넘게 해로한 배우자가 있었고, 나름 공부도 잘하고 제 앞가림도 곧잘 하는 엇나가지 않은 자식들도 있었다. 그 시대에는 흔한 가난이나 집안 내 우환도 없었다. 적어도 제삼자가 보았을 때에는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살아간 70년이었다.


시어머니가 남은 여생을 지난 삶보다 좀 더 유쾌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어머니의 말마따마 가족력처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해서 그게 말처럼 쉽진 않을 것 같다. 시아버지 병간호에 자신의 칠순을 또 뒤로 미룬 이타적인 시어머니. 자식들도 어머니의 그런 미덕을 좀 알아주고 감사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자식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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