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우정
지난주 정말 오랜만에 잊고 지낸 나의 본업을 되새기는 자리에 갔다. 그리고 나의 지적 동료들, 그러니까 여러 박사님과 교수님을 만났다. 내가 맡은 역할은 토론이었는데, 이것이 지적 허영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가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참 재밌고 보람 있었다.
박사님들은 그렇게 열심히 학업이라는 본분에 정진하고 계셨다. 그들의 성실이 대단하고, 나의 게으름이 조금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지적 호기심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과 무리 없이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잊고 지낸 박사님을 만났다. 박사님은 우리가 만나지 않고 지낸 2년 간을 정말 알차게, 성실하게 보내셨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변치 않는 박사님 특유의 순수함이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래서 내가 저 박사님을 은근히 좋아했었지!’ 발전하면서도, 본인의 장점을 잃지 않는 그런 면면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우리의 끊겨졌던 인연의 실을 다시 잇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생각해 보니 박사님들을 만나면 대화의 깊이가 사뭇 달라지는 것 같다. 여러 학술용어들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지만, 함축적으로 말해도 금세 이해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래서 결국 사람은 끼리끼리 놀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들을 만나면 내가 깨달아지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것을 좋아하고, 나름 소질도 있었으니 박사를 한 거구나 싶다.
사실 내가 조금 더 젊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긴 하지만 인생의 재미를 즐길 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긴 했다. 그러니까 건방지게도 공부하는 사람의 고지식함을 조금 답답하게 여겼었다. 놀 줄을 모른다고 그랬었지…
나이가 들고 나도 40이 되어 신체적 스러짐을 겪어 보니, 난 참 인생의 진지함이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성실함, 그리고 놀 수 없음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네들의 강점이고 미덕이었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인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여흥과 오락들을 조금씩 포기해야 하며, 그때서야 그런 것이 다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젊을 때 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나는 커리어에 있어서만은 진지하거나 성실하지 않았다. 물론 그 게으름 속에 결혼이라든지 육아와 같은 속세의 즐거움과 행복이 끼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박사의 본분을 많이 잊고 살았다. 그러면서 어디 가면 박사라는 어떤 명예직으로 존중을 받길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맞는 듯…!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과 점심을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면서 삶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것도 사실 나는 꽤나 잘한다. 그런데 일부러 그런 자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평소 보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요즘 내가 천착하고 있는 문제들을 말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어떤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박사님과의 만남이 참 의미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40대의 우정은 서로의 뜻을 공유하고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박사님들과의 교류가 더 잦아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기꺼이 환영할 수 있다. 그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내가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
역시 박사 하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