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끔 소설을 읽고 있다

문학(소녀)아줌마

by 한박사

원래 시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사춘기 시절에는 비문학보단 문학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법대에 진학하였기 때문이었을까. 20대에는 문학을 조금 덜 사랑하게 되었고, 30대에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는 가끔 소설을 읽고 있으며, 거기서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은, 내가 나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인문학 서적들보다 흡인력이 훨씬 강하다. 어떤 사건들이 있기 때문인지 그 이야기의 종결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되는 어떤 요인들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그 작가의 문장력이 굉장히 훌륭하다면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된다. 그렇게 나는 가끔씩 소설을 읽게 되는 중년 여성이 되었다.


예전엔 소설을 읽더라도 국내소설은 거의 안 읽었다. 너무 손에 닿을 것처럼 현실적인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친숙한 지명이 나오고, 한국의 계절이나 배경 등이 나오는 것이 어쩐지 너무 좁은 우물 속에 갇히는 것 같아 꺼려했었다. 과거의 나는 아마도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엔 거의 국내소설들을 섭렵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내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국내소설만큼 한 작가의 고유하고 섬세한 표현을 담아내는 것이 없다는 것을. 외국 작가가 아무리 훌륭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어도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 그 아무리 훌륭한 번역가라 해도 그 표현이 어딘가 어색해지고 그 언어 고유의 매력을 잃게 된다. 그러니까 한 작가가 지닌 다채로운 고유성이 번역가의 언어와 표현으로 한계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번역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문학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원서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언어는 그 언어 고유의 어떤 정서나 지향점, 혹은 어떤 민족성까지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어떤 작가의 “진짜”, 혹은 어떤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느끼려면 그 작가가 직접 쓴 언어로 된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국내소설일 읽게 되었고, 거기서 더 큰, 직접적인 감동을 얻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책을 꽤나 읽었다는 나조차도 어떤 작가의 소설은 사전을 찾아봐야 할 정도로 모르는 단어가 등장하곤 한다. (순수 우리말이나 방언, 고어 같은 것이 그렇다.) 그만큼 내가 우리말을 다 알지는 못하고, 그만큼 소설가의 단어력이 일반인의 스펙트럼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또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녹아들어 가기 마련인, 어떤 삶에 대한 철학 같은 것에 더 깊이 공감할 수도 있다. 나의 모국어이기에 그럴 수도 있고, 민족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사회와 문화적 배경에서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여러 감정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더 읽는 재미가 있다.


특별하게 어떤 작가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가들마다 스타일이 너무 다르고, 그 다름이 더 직접적으로 느껴지기에 두루두루 좋은 것 같다. 이 역시 과거 내가 외국소설을 읽을 때에는 특정 작가를 편식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유명하다 싶은 소설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그 고유의 표현력, 문장력, 위트나 재치 등으로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내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될 것 같다. 나는 한때 문학을 읽는 것이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지나치게 1차원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문학의 재미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


아직도 ‘시’는 잘 모르겠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읽어봐도 큰 감흥이 없다. 이것도 좀 더 성숙해야 할까? 또 모르지, 언젠가는 시집만 열심히 탐독하게 될지도… 아무튼 인생에는 참 재미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요가와 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