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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인정 욕구

결국 지 잘난 맛에 사는 것이지만

by 한박사

어제는 간만에 둘째 어린이집 운영위원회가 있었다. 50대의 원장님과 30대의 젊은 엄마 둘이 함께 했고, 거의 4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적인 자리지만, 사적인 얘기들을 아주 많이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그녀들이 대체로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좀 더 어렸을 때는 30대 젊은 엄마처럼 내 얘기들을 많이 하면서 은근, 아니 좀 대놓고, 잘난 척을 했었던 것 같다. 과시하는 것도 좋아했고, ‘나는 너네와는 달라.‘라는 느낌을 많이 주려 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 그때 참 철없이 귀여웠네. 허허…‘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은 자명하다.


지금도 그런 모습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달라진 점은 되도록 자중하려고 노력은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얘기를 많이 하기보단 상대방의 얘기를 많이 들어줘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상상력을 발휘하면 뜻밖의 즐거움도 있다. 무튼 그렇게 태도를 바꿔가나다 보니 푼수짓을 덜 할 수 있었고, 어떤 인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 갔다.


50대의 원장님은 다른 때보다 훨씬 썰이 많으셨다. 나는 그 대화에서 50대 여성의 어떤 이상이라든지, 욕구, 혹은 남에게서 보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같은 것을 읽었다. 그러니까 아직은 내가 내 또래들보다 젊다는 것, 나는 너그러운 와이프라는 것, 자식 하나가 엘리트 집단에 진입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온 원장님의 전반적인 성격이나 살아온 이력을 헤아려 보면, 그것은 다소 미화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내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나 역시 어떤 안 좋은 습관이 생긴다. 남을 자꾸 평가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연구자라는 직종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생긴 어떤 직업병 같기도 하지만… 나는 주로 이런 비평을 나의 남편에게 한다. (우리 남편 최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요즘은, 어쩌면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껴서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꾸 접촉하다 보면 언젠가 실망하게 되는 부분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첨엔 좋게 봤는데 어쩐지 좀 재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무분별하게 카톡을 하지 말자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문득 가족이란 게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물없이 얘기할 수 있으니까. 내가 좀 실망을 시키더라도 이해해 주고 품어줄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과 편하게, 그리고 외롭지 않게 하루하루를 영위해 갈 수 있으니까. 나처럼 사람은 좋아하지만, 또 너무 생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그래서 필수불가결하다. 내가 잘난 체 해도 속으로 재수 없다 하지 않고 바로 우쭈쭈 해주는 사람들.


그중 최고는 단연 우리 남편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소울메이트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단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잘난 체하면 ‘우리 와이프 최고!’ 해주는 사람. 평생의 반려를 할 사람이라면, 이건 정말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물론 아예 한 번도 안 했던 것은 아니고, 해봤는데 여기서 올 폐해를 너무 빨리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내 삶의 좋은 면만을 부각시키고 남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할 나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그려졌다. 돌이켜 봐도 역시 끊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자들의 인정욕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은 어쩌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편(혹은 연인)이 아닐까 한다는…?! 성공이나 출세는 안 해봐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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