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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Oct 21. 2023

시어머니와의 1박 2일

뭐든 백 프로 다 만족할 순 없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는 소위 시댁 찬스를 쓰기로 했다. 아이들이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남편의 도움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나 혼자 다 할 순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친정 찬스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더욱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친정은 이런 부분에서 이상하리만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식이 많으면 그 자식들의 손주들을 다 봐주기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안 봐주는 길을 택한다는 것.)


그래서 시어머니께서 목요일 오후에 오셔서 하루 묵고, 금요일에 첫째가 하원한 후 시댁에 데리고 가시는 나날들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시어머니께서 매주 1박 2일을 우리집에서 함께 하시게 된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러나저러나 내가 힘든 건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어머니가 계시면 육아의 부담이 줄어드는 부분은 분명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시어머니와 그렇게 몇 주를 보낸 후, 몇 가지 측면에서 다소 불만스러운 부분을 발견했다.


가장 불만스러운 점은 시어머니의 명령하는 듯한 어조였다. 이건 그동안 시댁에 갈 때 특별히 감지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서 밥을 챙겨드리기 시작하자 묘하게 어머니의 어조에서 “~ 해라. “ 라든지 ”~ 내놔라. “처럼 지시하고 명령하는 언어들을 사용하시는 거였다. 마치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옛날 종 다루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똑같은 말이라도 ”~ 좀 해줄래? “ 하면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쁠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물론 손주들 보는 걸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거니 나의 입장에선 감사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밥이라도 잘 챙겨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명령조에서 나는 마치 내가 대단히 낮은 존재로 여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렵고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느낌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부조리들을 그저 감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은근히 며느리가 가정 살림을 더 도맡아 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사실 남편에게 늘 고마운 점이 가사 분담을 꽤 많이 해준다는 것인데, 어머니의 입장에선 바깥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힘든데 집에서 설거지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이신 듯했다. 그렇게 본인 아들에 대한 비호를 하시면서 며느리를 나무라시는 듯했다.   


시어머니의 1박 2일이 거듭 되면서 우리 가정의 균형 추는 그렇게 조금씩 균형을 잃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더 많은 몫을 담당해야 할 것 같고, 시어머니의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엄마는 그만큼 육아와 살림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에 만연한 사고방식이기에 그 부조리도 그저 감내해야만 한다. 물론 워킹맘이라 해도 실제 현실에서는 남편보다 육아와 살림을 더 많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주변 사례들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은 이렇게 여러 번 데이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 부조리를 감내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하는데 사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돈이 많다 해도 그렇다.) 나 역시 시댁 찬스를 쓰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 및 불쾌함 등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백 프로 나에게 유리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결혼, 출산도 그렇다.)


삶의 어느 순간에는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손이 한창 많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아줄 손이다. 나와 남편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도움을 청하게 됐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시댁과 남편에 대한 더 깊은 충성이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두 아이를 상대하느라 얼마나 넋이 나가 있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따라서 나는 이 거래 조건을 납득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식이 웬수다. 그런데 그 웬수를 너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엄마는 과감히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엄마라는 말이 나는 요즘 좀 서글프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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