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사 Jan 25. 2024

천하장사 둘째

아들이 우량아일 때 생기는 일들

우리 둘째는 체중이 부는 속도가 남다르더니, 약 15개월 무렵 결국엔 첫째의 체중보다 앞서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측정한 적은 없지만 하루 섭취량이 둘째가 첫째의 세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 두 형제가 먹는 것에 있어서만 극단적인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스테미너 자체도 다르다. 둘째는 확실히

태동이 훨씬 셌다. 둘 다 아들임을 입증하듯 하루에도 여러 번 꿀렁거림을 보여줬는데, 첫째보다 둘째가 그 정도가 훨씬 셌다. 정작 엄마는 첫째를 돌보느라 둘째 때는 첫째 때만큼 잘 먹지를 못했는데, 이 놈은 씨(유전자) 자체가 남달랐던 것이다.


갓난아기가 힘이 세봤자 얼마나 세겠냐만은, 둘째의 악력은 실로 놀라웠다. 지금은 저렇게 우량아인 둘째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체중이 3kg이었다고 하면 다들 믿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정말 너무 작고 또 말라 보였다. 그런데 손가락 힘이 남달랐다. 가끔 그 조그만 손으로 엄마의 살을 찝는데 진짜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우량아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타고나길 입이 짧았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거의 한 번도 분유나 이유식을 남긴 적이 없다. 정말 너무 잘 먹고, 잘 소화했다. 잘 먹는 애들은 특징이 먹는 속도가 빠르고, 웬만하면 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와는 너무 다른 둘째의 식탐 때문에 나는 열심히 젖병 셔틀과 요리를 해야 했다.


이런 우량아들은 걷기 시작하면 더욱더 엄마가 힘들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말짓을 시작하고, 집 여기저기에 있는 먹을 것들을 찾아내고, 달라고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제 냉장고 문도 열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힘도 세고, 먹을 것에 대한 욕망도 강하다 보니 이맘때의 첫째보다 훨씬 사고를 더 많이 친다. 당연히 훈육도 훨씬 더 빨리,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예쁘냐고 물으면, 내 새끼니 둘 다 예쁘다. 그런데 누가 더 힘드냐고 물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천하장사 둘째다. 옛날 같으면 장군감이라고 할만한 우리 둘째. 그런데 이런 장군감 키우려면 엄마가 먼저 여장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나? 그래서 내가 둘째를 낳고 한동안은 빌빌 거리다가 체력단력을 통해 이젠 나름 튼튼한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올 겨울은 감기 한 번 없이 지내는 중)


튼튼한 아이가 좋은 점은 잘 안 아프다는 것이다. 아프더라도 마른 첫째에 비해 잘 견뎌내고, 버티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맷집이 강해 어디 내놔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어떤 안도감이 있다. 특히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어느 시기까지는 육체적 “힘“이 매우 중시되지 않나. 이 녀석은 분명 어느 집단에 속하든 그 안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 첫째는 여자아이보다 부드럽고 연약해 보여 걱정이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 쌀이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둘째가 먹는 양도 한몫 하지만, 엄마 아빠도 이 녀석을 감당하기 위해 그전보다 더 밥심을 기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모든 요소들에 스테미너 수치가 높아지는 듯한 느낌적 느낌. 첫째도 둘째를 상대하기 위해 전보다 호전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여간 집안에 장군 하나가 있으니,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그 아우라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녀석이 생각보다 똑똑하단 생각을 최근 많이 하게 된다. 많이 먹으니 두뇌의 성장속도도 빠른 걸까? 눈치가 빠른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생각보다 내 말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됐다. 그러면 내 잔소리들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 맘대로 한다는 것은 그만큼 깡이 있다는 소리겠지. 하여간 쉽지 않은 녀석이다…


첫째에 비하면 엄마에게 훨씬 많이 혼나는 둘째가 어느 때는 좀 가엾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아니면 어느새 엄마를 우습게 아는, 모 TV프로그램의 금쪽이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타고난 에너지와 힘이 강한 아이, 특히 남자아이는 그 힘을 스스로 잘 컨트롤할 수 있도록 수백 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은? 엄마도 만만치 않은 장군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 매일 운동하고 독서하며 힘을 기르는 이유이다. 우리 둘째 덕분에 엄마가 진짜로 강해지는구나. 고마우면서도 얄미운…!


작가의 이전글 돈지랄을 경계할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