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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Feb 09. 2022

‘우리’의 이야기를 낯설게 바라보기

연극 <쉬지 스톨크>


“난 나의 집인 이 전쟁터를 폭파시키고 싶어. “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쉬지 스톨크는 말한다. 무엇이 그녀의 삶의 공간을 전쟁터, 그리고 불태우고 싶은 감옥으로 만들었을까. 집과 가족들은 쉬지 삶의 전부였을 텐데.


연극 <쉬지 스톨크>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한 여성의 일상 속 모습들을 무대 위로 불러온다. 작품은 단순히 그녀의 삶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는 이야기는 여성에게 부여되는 의무와 사회적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한다.


극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쉬지 스톨크라는 한 여성과 그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의 이야기는 노란빛 조명이 비추는 좁은 원형 무대에서 시작한다. 원은 시작점에서 출발해 끝점에 도달하더라도 그 끝점이 다시 시작점이 되어버린다. 쉬지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일상과 노동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출구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관객은 무대 양면의 객석에 앉아 쉬지가 겪는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따라간다. 그녀의 감정에 이입해 삶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때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본다.


쉬지 스톨크는 결혼과 출산 이후 가사 노동과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인물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똑같은 노동이 시작되지만, 그 노동의 명확한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공장에서 일을 하다 만난 남편의 욕망에 따라 쉬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쉬지를 필요로 할 때마다, 그녀는 전적으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엄마라는 존재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쉬지 스톨크는 아이의 존재로 인해 지워진다. 결혼 후의 출산과 그것을 근거로 당연시되는 모성애와 양육은 쉬지의 일상을 지배한다. 쉬지는 삶에서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 것들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녀에게 일상은 더는 견딜 수 없는 절망스러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은 억압당한 채, 사실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쉬지는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소에 억압과 환멸을 느낀다. 연극은 그녀의 감정 상태를 귀에 거슬리는 불편한 소리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파편화되고 반복적인 대사들로 표현한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분열을 겪는 쉬지의 모습과 행동은 현실과 계속해서 부딪힌다. 그녀가 노동을 멈추는 것은 가정에서 마땅히 다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해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불안정하게 유지되던 일상은 결국, 쉬지가 아이를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 방치해 죽인 사건으로 한순간에 파괴된다.


”좀 정상인처럼 잘 순 없어?”


쉬지 스톨크의 남편인 앙스 바시리 크러즈는 묻는다. 그는 혐오스러운 아이들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소리치며 밤잠을 방해하는 쉬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가 각자의 노동과 일상을 견디며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쉬지는 정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상인처럼 행동하길 요구받는다. 과연 사회적인 기준과 통념에 따라 규정된 정상성과 보편성을 명목으로 여성 존재의 삶을 판단 내리고 결정지을 수 있을까.


연극 <쉬지 스톨크>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한 프랑스 여성의 개인적 이야기에서 현재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극은 일상이라는 거대하고도 보편적인 틀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의 역할과 책임에 질문을 던진다. 쉬지는 홀로 감당해온 노동과 일상을 중단할 권리조차 갖지 못했다. 우리는 보편적인 당연함을 유지하는 것 속에는 사회적인 강요와 개인의 희생이 존재하며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일상 자체가 여성의 억압과 구속의 연속일 수 있다는 낯선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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