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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Apr 30. 2022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 뮤지컬 <쇼맨>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쇼를 살고 있는가

출처: 국립정동극장


무대를 울리는 트럼펫 소리와 함께 한 노인이 걸어 나온다. 파도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의 조명은 점차 남자의 몸을 잠식해가고 그는 힘겹게 뛰어오른다. ‘내 키만큼의 높이’를 가진 바다이기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 뛰어오르고 또 뛰어올라야 한다. 평범해 보이는 마트에서 근무를 준비하는 한 여성은 아무 일 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하루가 흘러가길 바란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뛰어오르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무대 위에 올랐다.



오리지널과 그렇지 못한 것

미국의 한 마트에서 매니저 대행으로 일하고 있는 수아의 유일한 취미는 유원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수아는 퍼레이드에서 원숭이 인형 탈을 쓰고 일하던 노인 네불라의 사진을 찍 게 된다. 사진에 대한 팁을 주기 싫었던 수아는 사실 자신이 프로 사진작가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 말에 네불라는 본인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고 수아는 돈을 벌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6개의 콘셉트를 담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수아는 네불라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무대 위에서는 네불라가 살아온 과거의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나이도, 직업도 어느 하나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만나며 극은 전개된다.


출처: 국립정동극장

네불라가 수아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한 것은 삶에 대한 타인의 판단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을 잘하던 네불라는 배우를 꿈꾸며 극단에서 활동 하지만, 주연 오디션에서 빈번히 좌절한다. 네불라 자신의 색깔 없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따라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네불라는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독재자 ‘미토스’의 연설을 듣게 되고 그 연설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지지 못한 오리지널리티를 느낀다.


결국, 네불라는 배우가 되기를 포기하지만, 우연히 심부름을 위해 찾은 오디션장에서 미토스의 흉내를 낸 것을 계기로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로 발탁된다. 네불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독재자 미토스 때문에 배우라는 꿈을 포기했지만, 역설적으로 독재자의 존재로 인해 대역 배우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네불라는 우연히 미토스의 연설을 연습하는 한 사람을 목격한다. 네불라는 그를 신입 대역배우라 생각해 억양을 교정해주며 연설 시범까지 보이는 데, 사실 그는 대역배우가 아닌 독재자 미토스였다. 누군가는 그를 오리지널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미토스 또한, 그저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음이 드러난다.


출처: 국립정동극장

독재자의 삶에 완전히 몰입할 정도로 역할에 충실하던 네불라는 독재자가 파멸하는 순간에서 야 자신이 살아온 현실과 무지함을 깨닫고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백으로 법의 처벌을 받고 재산 대부분을 기부했지만, 이 행동들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네불라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대역 배우 시절이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네불라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며 고통 속에 빠져있었다.


<쇼맨>에는 총 6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네불라, 수아 역할을 제외한 4명의 배우는 독재자에 게 충성하는 장교, 마트 직원과 점장, 수아의 양아버지 등 다양한 역할을 오간다. 각 배우의 역할 이름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배우’이다. 네 번째 배우는 생략되어 있다. 네불라의 인생 속 한순간을 지배했던 이름인 ‘네 번째 배우’는 누구도 대신하지 않는다.


네불라의 모든 이야기를 지켜본 수아는 그의 삶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네불라에게 전해주면서 자신이 바라봤던 다양한 네불라의 모습들을 이야기해준다. 네불라는 건네받은 사진을 하나씩 넘기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쇼맨>의 무대는 비교적 단순화되어 있다. 2층 공간에는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노출되어 있고 푸른빛의 조명이 무대를 채운다. 이외에 특별한 대소도구는 놓여있지 않은 채로 무대는 비어있다. 무대 전환은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소품과 구조물로 이루어졌다. 중앙에는 카트 이미지가 박힌 채 ‘GOOD DAY’라고 적힌 네온사인은 극 공간을 한순간에 마트로 전환했다. 마트 쇼핑 카트는 앞면에 달린 말 조형물로 유원지의 회전목마가 되고 간이 계단은 후면을 강하게 비추는 핀 조명과 함께 독재자 미토스의 연설장이 된다. 주로 배우들이 직접 대도구를 옮기며 장면이 구성되었는데 그 흐름이 길어지면서 오히려 집중을 깨트리는 부분도 존재했다는 점에서는 일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소품들의 변주와 다채로운 조명의 활용은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무대 2층에서 연주되는 밴드 음악도 극 분위기 조성과 몰입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첼로와 바이올린, 두 현악기는 극 전반에 웅장함을 더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상황을 청각적으로 섬세하게 전달했다. <쇼맨>은 뮤지컬임에도 연극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넘버보다 인물들의 대사가 중점이 되었다. 따라서 전체적인 넘버가 중독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주기보다 극적 상황과 인물들의 내면을 강조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극적 구성은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출처: 국립정동극장

극에서 수아는 네불라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이자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등장한다. 네불라의 사진을 찍으면서, 즉, 프레임을 통해서 수아는 네불라의 삶과 마주한다. 네불라가 사실 많은 사람을 고통받게 한 독재자의 대역 배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수아는 네불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에 따라 무대 위 수아의 행동도 달라진다. 이야기를 바라보던 수아는 한 손으로 시큰둥하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불편한 마음에 급하게 촬영장을 떠난다.


그렇게 네불라의 이야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수아는 점차 네불라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수아는 부모를 대신해 발달장애인 동생을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아였다. 가족에게 착한 딸로 인정받기 위해서 수아는 최선을 다했지만, 한순간에 일어난 사고로 집을 나오게 된다. 수아의 생일, 수아가 잠시 친구의 집에 다녀온 사이에 홀로 있던 동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수아는 과거의 기억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수아에게 주어진 역할은 마트 매니저 대행, 한국인의 이름과 모습을 한 미국 거주자였다. 새로운 마트 매니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재자 미토스가 사람을 조정하던 방식을 따라서 행동하고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계속해서 수아의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마트 점장은 수아는 매니저의 빈자리를 채우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을 각인시킨다. 수아는 대역 배우로 살았던 네불라처럼 자신 또한, 누군가를 대신하는 자리에서 ‘나’의 모습을 잃은 채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이렇듯 작품은 네불라와 수아라는 두 인물을 통해 과연 우리는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체적인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출처: 국립정동극장

이번 작품에서 단연 돋보였던 것은 네불라 역의 강기둥 배우였다. 어린아이부터 독재자의 대역배우, 노인의 모습까지를 표현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장면을 재현하는 극중극을 오가며 관객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네불라의 역할은 주요했다. 강기둥 배우는 강한 에너지로 공연을 이끌었고 폭넓은 나이대를 표현하는 연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특히 대역배우임에도 점차 독재자의 역할에 감정적으로 빠져드는 모습과 네불라의 스탠드업 코미디쇼인 ‘이디엇 쇼’에서 독재자를 희화화하며 주목을 받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비참함을 자아냈다.


극의 첫 장면에서 사용된 넘버는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변주되어 나타난다. 첫 장면에서 네 불라 홀로 존재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인물이 함께 키만큼 높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장면의 마지막에서 수아는 제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뛰어오른다. <쇼맨>은 수아가 외면했던 과거를 꺼내어 마주하고 동생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네불라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각자가 가진 바다에서 헤엄치고 가라앉고 뛰어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주체적인 나로서 존재하는 것에는 분명한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위안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쇼맨>은 창작 뮤지컬 초연임에도 입체적인 인물과 서사를 구축해내려는 시도와 함께 동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주제 의식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향후 다채로운 형식과 주제를 담아낸 한국 창작 뮤지컬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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