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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Jul 04. 2022

아동극 레퍼토리화의 새로운 가능성

뮤지컬 <슈퍼맨처럼-!>

 어린이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아동극은 어린이에게 감각적인 예술적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요하다. 그러나 공연계 지원은 성인 대상의 공연 단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동·청소년극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현실적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연극의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아동극에 있어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작품이 있다. <슈퍼맨처럼>은 극단 학전 어린이 무대 레퍼토리 뮤지컬로 2008년 초연된 이후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아동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가깝게 다가서는 작품이며 아동극 레퍼토리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출처: 학전 홈페이지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 <슈퍼맨처럼-!>

<슈퍼맨처럼>은 장애라는 것이 틀리고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수많은 다른 모습 중 하나라는 점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는 정호의 집 거실이 구현되어 있다. 벽에 걸려있는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E.T,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물리학자가 된 스티븐 호킹의 사진은 우주과학자라는 정호의 꿈을 보여준다. 일상적이고 아늑한 공간으로 가족들이 모이는 식탁, 어지럽게 쌓여있는 상자들, 빨래 바구니가 무대에 놓여있다.


 주인공 정호는 교통사고로 척수 장애를 갖게 되어서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다. 휠체어나 걷기를 보조해주는 도구인 워커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다. 하지만 정호는 자신을 믿어주는 엄마와 동생 유나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온 정호는 학교 전학을 준비하지만, 심한 반대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이해와 존중이 당연한 정호의 집과는 달리, 바깥의 세상은 차갑고 삭막하다. 이를 보여주듯이, 무대가 전환되면 무의탁 노인 보호 시설을 이전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높은 회색빛의 벽이 세워진다. 이곳은 공사장으로 노인 보호 시설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유나는 갑자기 사라진 오빠를 찾다가, 우연히 축구를 좋아하는 태민이와 만나게 된다. 유나는 태민이에게 오빠 정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태민이는 새로운 또래 친구가 생긴 것에 기뻐한다. 하지만 유나가 오기 전, 휠체어를 타고 있던 정호의 모습을 봤던 태민은 정호를 ‘애자’라고 부르며,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유나에게 늘어놓는다. 오빠가 ‘운동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유나의 말에 당연히 정호가 비장애인일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작품에서 주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편견과 잘못된 인식이다. 태민이는 정호와 만나기 전까지 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를 본 적은 있지만, 장애인과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직접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만은 가득했다. 공사장을 지키는 경비원 아저씨도 장애인인 정호를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호는 하반신 장애라는 신체적 장애만 가지고 있음에도, 정호를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로 판단 지어 버린다. 따라서 정호에게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을 건네며 대화하고자 하는데, 정호에게 그런 일방적인 배려와 도움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서부터 비롯된 근거 없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이다. 극은 장애의 종류, 정도에 따라서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장애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며 이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출처: 학전


 극이 정호의 친구가 되는 ‘태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돋보였다. 처음에는 장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 있었지만, 정호, 유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면서 함께 어른들의 편견을 극복해나가는 데 앞장선다. 그런 태민이는 정호의 집에 놀러가, 평소에 정호가 사용하는 보조 기구들을 배우고 직접 경험해보면서 정호의 대단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기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근력과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으로서 일상에서 보조 기구를 사용하며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의 해석이 아닌, 각자가 가진 서로 다른 능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태민이가 정호의 휠체어를 타던 중, 교감 선생님은 자기 학교로의 전학을 만류하기 위해 정호의 집에 찾아온다. 학교가 과학 영재를 육성하는 학교로 지정될 예정인데, 장애 학생이 다닌다면 학교 이미지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였다. 정호는 그 어떤 학생보다 과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과학자라는 꿈을 꾸는 아이였기에 그 이유라면 반대 사유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은 정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전학을 강하게 반대한다. 정호의 집에 들어선 교감 선생님은 휠체어에 앉아있는 태민이가 정호라고 판단한다.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정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만나러 온 장애인 학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오히려 태민이에게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호에게 ‘너는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것이 맞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역설적인 장면은 웃음과 함께 장애에 대해 단편적으로 규정짓는 사고를 유쾌하게 지적한다. 


 정호와 유나, 태민이는 이웃 할아버지로부터 축구 경기에 초대받아 경기장으로 향하지만, 경기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된다. 도로와 인도 사이에 있는 수많은 턱으로 인해 길을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자연스레 우리 사회 속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상기시킨다. 교감 선생님도 정호에게 특수 학급이 있는 학교로의 전학을 추천했다. 그 학교는 정호의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이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움직임에 제약이 없는 비장애인에게는 고작 버스 한 정거장일지 모르지만, 정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걸어가게 된다면 동생 유나가 매일 그 거리를 직접 휠체어를 밀어서 등교해야만 했다. 지극히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구성된 사회 구조 안에서 소외당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이 비추어지는 순간이다. 


 작품에서 장애인은 일방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정호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설거지를 하고 유나는 빨래를 한다. 운동하기를 좋아하는 정호는 발 대신, 손을 이용해 축구를 하고 농구와 수영도 즐겨한다. 정호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 할아버지도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돼 거동이 불편하지만, 쫓겨날 위기에 처한 독거노인들을 돕는 데 앞장선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맡아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출처: 학전

 넓은 세상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뮤지컬 <슈퍼맨처럼>은 이 당연함이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서로 간의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화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극 전반에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사실적인 색채가 강한 극임에도 아이들의 흥미와 재미를 충분히 이끌어낸 작품이다. 극에서 모든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멜로디언, 첼로, 기타와 같은 다양한 악기의 활용은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전달하듯이 작품에 생동감을 더했다. 장애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음을 전하는 마지막 넘버에서는 가사의 내용을 강조하는 반복적인 멜로디가 두드러졌으며, 배우들이 수어와 함께 노래한 점도 새로웠다. 


 뮤지컬 <슈퍼맨처럼>은 완성도 있는 작품성을 보여주며, 아동극 레퍼토리화의 충분한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다. 예술성 있는 아동극이더라도 창작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예산 부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단순히 일회적인 작품으로 그치게 된다. 더 많은 아동극 레퍼토리 작품이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장기적인 공연을 통해 더 많은 어린이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공연계 전반에서 아동극의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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