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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Jan 13. 2022

엎치락뒤치락 앞으로 나아가는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

 국립극단 어린이 청소년 극 연구소 제작의 <발가락 육상천재>(김연주 작, 서충식 연출)가 2020년 10월 30일부터 11월 22일까지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연극은 오프라인 공연과 함께 세 차례의 온라인 극장을 생중계로 진행하여 극장에 찾지 못한 관객들과 만났다. 특히 이번 극은 올해 5월에 공연된 <영지>에 이은 국립극단 청소년 극 ‘12살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국립극단 어린이 청소년 극 연구소는 청소년 극의 연극적 의미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탐색하며 청소년 극을 제작해오고 있다. 이번 작품 <발가락 육상천재>에서는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자갈 초등학교 육상부 아이들 네 명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출처: 국립극단 공식 홈페이지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는 흔히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묶이는 4학년부터 6학년, 그 중간에 위치한 12살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저학년 때와 같은 어린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온전한 청소년으로 행동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나이이다. 주변의 친구들보다는 뛰어나고 싶지만, 동시에 그 사이에서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밀려, 지고 싶지도 않다. 멋지고 잘난 사람을 꿈꾸면서도, 친구과 어울리지 못한 채로 혼자 남는 것도 싫은, 자갈 초등학교 육상부 네 명의 아이들은 그런 과도기적인 시기를 겪고 있다.


 이야기는 학교에 정민이 전학을 오면서 시작한다. 육상부에서 1등만 도맡던 호준은 뛰어난 달리기 실력을 가진 정민으로 인해 처음 실패를 경험한다. 자신을 앞서가는 정민의 뒷모습을 보면서 호준은 더는 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정민이 선택한 것은 거짓말이다. 신발에 돌이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깜빡 잠이 들어서, 인어가 발가락을 먹어서 뛸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소한 거짓말로 보이지만, 1등 자리에서 밀린 호준에게는 중대한 문제였을 것이다. 호준은 우사인 볼트 형과 전화하며 인정받는 변호준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호준은 친구들 사이에서 관심과 인정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우네 초밥집을 ‘우리’ 아지트라고 말하면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호준과 경계를 긋는다.


출처: 국립극단 공식 홈페이지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의 빈 무대는 온전히 육상부 아이들의 세계가 된다. 나무로 된 뒷벽 앞에는 배우들이 오갈 수 있는, 계단식의 높이 감을 가진 공간이 별도로 구축되어 있다. 연극은 비어있는 무대 앞면의 공간과 뒤편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특별한 대도구 없이, 무대 공간은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으로 아이들의 아지트인 초밥집, 학교 운동장, 인어가 나타나는 낚시터가 된다. 유일한 소도구인 테이블과 원통 모양 오브제들은 관객의 상상력을 열어두면서, 자유롭게 활용되어 공간 구축에 도움을 주었다. 작품 전반에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조명의 활용도 두드러졌다.


 바다 공간은 빈 무대 바닥을 가득 채운 푸른빛의 조명으로, 낚시터에서 인어를 기다리던 시간의 흐름은 석양을 연상시키는 황색에서 주황빛 조명으로의 변화로 표현된다. 동시에 달리기 하는 인물의 속도감을 나타내는 연극적 요소로 시각적인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장면의 전환마다 삽입된 중독성 있는 랩과 음악, 혹은 ‘이곳이 바다가 되었음’을 알리는 배우의 내레이션은 재치 있게 상황을 정리하며 공간의 변화와 새로운 장의 시작을 알렸다. 이러한 감각적인 연출은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속도감과 리듬감 있는 전개를 가능하게 하였고, 청소년기 아이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에너지와 표현에 집중하게 했다.


 청소년 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는 ‘성장’이다. 청소년기는 아동기를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발가락 육상천재> 또한, 12살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12살 아이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극의 전개이다. 작품은 육상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인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인어에 대한 언급은 마을에 돌던 속설로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마을의 전설부터였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인어가 필요했다. 호준은 인어가 자신의 발가락을 먹어서 달릴 수 없다는 거짓말을 증명하기 위해, 상우는 망해가는 초밥집을 살리기 위해 인어 초밥이 필요했다. 은수와 정민도 자신들의 아지트를 지키고 싶었다.


출처: 국립극단 공식 홈페이지


 극은 인어의 존재를 실제로 무대 위에 올린다. 어른이 아닌,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상상력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일반적인 인어의 이미지가 아닌 머리는 물고기이지만 몸은 사람의 모습을 한 인어가 나타난다. 인어는 아이들과 함께 환타를 마시고, 호준의 거짓말을 옹호해주며 정민과 달리기 시합도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들의 발가락을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물고기와 사람의 형상을 동시에 한 인어의 모습과 행동은 아직은 미성숙하고 미완인 상태로 혼란과 갈등을 겪는 아이들의 현실과 마음의 상태와 겹쳐진다. 그렇게 인어는 청소년도, 어른도 아닌 그 정의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는 12살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는 친구들 사이에서 복합적인 감정과 고민을 경험하는 12살 아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호준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꼴등이지만, 뛰는 것이 좋다고 말했던 은수도 한편으로는 1등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상우도 달리기 실력이 뛰어난 정민을 칭찬했지만, 사실 잘하는 친구들을 질투했다. 호준에게 결과를 인정하는 스포츠맨 정신을 강조하던 정민도 인어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패배한 정민도 호준과 같이 결과를 회피하려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내면의 각기 다른 생각과 입체적인 모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어에게 발가락을 잡아먹혔던 아이들은 가른 인어 뱃속에서 발가락을 찾지만, 누구의 발가락인지에 대해 싸우기 시작한다. 가장 긴 발가락을 가지고 싶어 하는, 달리기 천재의 발가락이 내 것이길 바라는 아이들 내면의 생각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결국, 발가락을 고르기 위해 달리기 시합을 하기로 한다. 인어에게 발가락을 하나씩 먹혔기 때문에 본래 달리기 실력이나 등수는 중요하지 않은 가장 공평한 경기를 한다. 작품은 아이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고, 육상부에서 항상 꼴찌였던 은수가 앞서 나가면서 끝이 난다.


 같은 나이와 학교의 육상부 친구들이지만, 네 명의 아이들 모두 각기 다른 생각과 고민을 안고 있다. 은수는 친구들에게 왜 1등은 한 명밖에 없는지에 대해 물었다. 극의 결말에서 누가 1등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관객이 알 수 있는 전부는 모두가 출발선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고, 항상 1등을 해왔던 호준과 정민이 아닌, 은수가 시작부터 빠르게 치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12살 아이들이 각자 고민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앞서 나가는 순서는 다르더라도, 엎치락뒤치락 나아가는 그 자체가 중요할 것이다.


출처: 국립극단 공식 홈페이지


 ‘한쪽 발로 땅을 앞으로 민다는 느낌으로 팍팍 나가는 거야’


 육지에서 한 걸음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인어에게 달리기를 가르쳐주던 호준은 말한다. 한쪽 발로 미는 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육상은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앞을 향해 달리는 경기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지금에 머무를 수 없다. 이미 출발한 육상 경기처럼 우리 모두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가 이런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담았기에 그 시기를 겪고 있는, 혹은 지나온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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