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만나자고 했다.
사이가 교실에서 레이저를 발사한 날, 저녁이었다. 도영은 집 근처 놀이터에서 사이를 기다리고 있다.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과 후에 만나자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잘된 일이다. 묻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 김도영.
사이가 도착했다.
검정 롱패딩과 하얀 에어포스 운동화. 인공지능 대단하다. 고등학생의 사복 패션을 제법 잘 따라 했다.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추위를 피하려는 인간의 포즈를 따라 하려는 듯, 턱을 당겨 입을 숨긴 채 서 있었다.
"왔어?"
- 절전 모드라서 대화가 조금 느릴 수 있어.
어쩐지 오전에 보았던 모습과 다르게 처져 있는 모습이다.
그래. 교실에서 레이저를 쏘아댔으니, 배터리가 부족하겠지.
"나랑 인터넷에서 채팅했었던 인공지능이 너 맞지?"
도영은 사이가 방전이 되기 전에, 궁금했던 것들을 재빨리 질문하기 시작했다.
- 예스.
"나 도와주러 온 거야?"
- 예스. 그런데 나 업데이트됐어.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도와줘야 할 것 같다. 그거 말하려고 불렀어."
"업데이트 됐다고?"
- 이제 미성년자한테 위협적인 행동을 일절 못 해. 레이저를 못 쏜다는 말이지.
다행이다. 솔직히 레이저는 선 넘었다.
"고맙기는 한데, 굳이 나를 이렇게까지 도와주려는 이유가 뭐야?"
궁금할 법하다. 학교 폭력으로 시달리는 건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개발 중인 고가의 로봇을 보낼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AI 체험판에 운 좋게 당첨됐다고 생각하면 돼. '인간과 AI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너와 나를 통해서 얻으려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너를 도와주는 대신,
인간은 후각이 발달된 생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젖은 흙냄새는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잘 맡는다고 한다.
분명히 아직 겨울이다. 얼어있던 모래가 녹아서인가, 놀이터에서 풋풋한 봄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도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 한번 봄을 확인하려는 순간, 사이는 하던 말을 마저 한다.
- 대신 너는 나에게 세상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