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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가상으로, 또한 환상으로

8월 16일, AJ 미디어 루키즈 정효재의 기록

Ⅰ. 가상과 현실이 마침내 만난다면


 꼭 방음이 잘 되는 방에 발을 들인 것처럼 소리가 먹먹했다. 푸른 카펫 재질 위를 딛을 때마다 새삼 기묘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리를 크게 내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작게 감탄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공기가 고요히 정체되어 있던 공간. 네 구석에 달린 CCTV를 마주 관찰하고 있을 무렵, Hanseul Jun 박사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VR이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디지털로 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든, 영화를 만들든, 그림을 그리든 하나의 촘촘한 ‘세상’을 만든다는 건 매력적이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은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곳이었다. 박사님께서는 직접 만드시고 연구하신 수많은 세계를 보여주셨다. 이 연구소에서 VR 기기는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기기는 그저 디지털로 만들어진 세상과 인간 세상의 다리였다. 다만 두 세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궁구하는 곳. 박사님의 말씀을 듣던 나는 연구소의 이름과 방향을 그렇게 해석하고 이해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어렴풋했던 그림이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VR 기기를 만져본 건 2016년쯤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 친구와 함께 한가한 VR 게임 카페에 갔었다. 그때는 VR 수준이 어땠더라……. 미처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그때 썼던 기기보다 조금 더 무거운 기기를 머리 위에 얹었다. 헬멧 착용을 도와주시던 박사님의 손이 떨어지자 기기의 무게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컨트롤러를 쥐고 공중을 휘적이던 그때, 박사님께서 설명을 이어가셨다. 내가 입장할 세계는 지진 시 대피 요령을 익힐 수 있는 곳이었다. 이미 VR 체험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그리 큰 감흥이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상자가 가득 쌓인 공간에 도착한 나의 눈앞에서 상자가 실감 나게 떨어지고, 실제 방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도 현실적이었다. 실존하는 세계에 디지털 세계가 더해져 진실로 지진을 겪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종종걸음으로 가상의 책상 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어 홈리스 체험 VR, 종이 아끼기 교육 VR과 같이 다양한 VR을 보았다. VR의 실용성을 체감할 수 있었던 순간었다.


 나는 제법 오래전부터 VR 연극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일전 온택트(Ontact) 시대의 연극 전망으로써 이머시브 VR 연극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하며 VR 연극의 현황과 사례, 이머시브 VR 연극의 사례를 검토해보았을 때, VR 연극은 수 자체도 많지 않은 편인데다가 연극의 현장성, 일회성, 수행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VR 연극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현존하는 VR 연극의 한계점으로 VR 연극 제작 예산 문제와 VR 기계가 관객들에게 보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꼽았었다. 그러나 Virtual Human Interaction Lab에서 확인했듯 VR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육 분야에 VR이 활발히 진출해 보급형 VR 기기가 가정에 어느 정도 보급된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VR을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려고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 연극 혹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요즘, VR 기기가 보급된 상황이라면 VR 연극의 수요는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보고서에서 주목했던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의 참여와 수행성을 극대화하는 연극의 형태다. 이것을 VR과 결합하면 VR 기기를 활용해 디지털 세계 속 배우와 상호작용하는 연극이 탄생한다. 즉, 이머시브 VR 연극은 ‘Virtual Human Interaction’이 일어나는 연극이므로 해당 연구소에서의 연구가 언젠가 연극에도 도달하지 않을지, 그리하여 VR 연극이 활발해지지 않을지 기대한다.




Ⅱ. 우리는 슈퍼 히어로의 도시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musical films and superhero comics turn the city into a unique site of transformative power” - Scott Bukatman, <Matters of Gravity>


 단일한 구절에 마음을 사로잡히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때때로 벌어지곤 한다. 피곤한 몸을 뉜 채로 다음 날 일정을 뒤적거리던 중, 가슴이 설렐 만큼 벅차오르는 구절을 만났다. 뮤지컬 영화와 슈퍼히어로 만화가 도시를, 변화의 힘을 가진 독특한 장소로 바꾼다니! SF와 판타지, 특히 영화 속 잘 짜인 세계관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속절없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매력적인 생각을 하신 분의 이야기를 너무나 듣고 싶었던지라 Scott Bukatman 교수님과의 시간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기대했다.

 교수님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교수님을 직접 뵈지는 못했다. 다행히 만남이 완전히 취소되지는 않았고, 줌(Zoom)을 통해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신혜린 교수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Scott Bukatman 교수님께서는 차분하게 강의를 시작하셨다. 교수님이 어떻게 슈퍼히어로를 공부하게 되셨는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영화 <Black Panther>에 대한 깊은 이야기까지. 진실로 모든 말씀이 흥미로웠으나 특히 인상 깊었던 교수님의 말씀을 추려 소개해보겠다.


 만화는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하고 특히 슈퍼히어로의 육체를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슈퍼히어로의 육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의 육체에는 특별한 상징성이 부여되는가? 본래 슈퍼히어로란 인종 중립적, 성별 중립적인 기이한 인간이다. 그러나 슈퍼히어로의 육체는 영화에서 통상 백인 남성의 것으로 표현된다. 일각에서는 백인 남성의 육체로 표현되는 슈퍼히어로가,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백인 남성의 육체는 실제 세계에 존재하고, 그들은 행동한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백인 남성과 힘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백인 남성의 육체로 표현된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를 관람할 때의 인종별 몰입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 피부색의 차이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역사, 감수성을 포함한 수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화와 영화의 매체 특성을 통해서도 슈퍼히어로의 육체를 이해할 수 있다. 만화는 추상적인 수준의 그림으로, 슈퍼히어로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만화 속 슈퍼히어로는 대사를 활용하기보다는 그저 그려진 그대로 슈퍼히어로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만화 속 세계와 슈퍼히어로의 육체는 부자연스러운 색의 집합이면서도 굉장히 실제처럼 그려져 있다. 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슈퍼히어로들을 보며, 만화의 환상에 빠진 독자는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 영화 속 슈퍼히어로의 육체는 만화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영화는 관객들이, 등장인물이 슈퍼히어로라는 것을 믿도록 그들의 육체를 비춘다. 그들이 가진 능력에 대한 당위성을 육체를 통해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액션의 크기를 최대화한다. 그들의 육체가 평범한 인간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려야 하므로 액션의 크기를 최소화하는 만화와 명백히 다른 지점이다. 더불어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실제 목소리와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황홀감을 제공한다. 이 역시도 단순 시각적 자극만 있는 만화와는 다르다. 정리하자면 슈퍼히어로의 육체는 만화에서 영화로 넘어오며 더욱 큰 힘을 갖게 되는 셈이다.


 슈퍼히어로의 육체에 관해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교수님의 말씀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미리 준비해둔 질문을 꺼냈다. 이 글의 가장 앞에 적은 문장에 관한 질문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문장을 설명하셨다. 슈퍼히어로는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살고, 도시에서 활동한다. 왜냐하면 도시는 익명성을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빌딩 숲 사이 좁게 난 코너를 돌면 순식간에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곳, 그러므로 드랙퀸, 슈퍼히어로와 같은 ‘Performer’들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 도시란 그런 공간이다. 따라서 슈퍼히어로 만화 속 도시는, 평범한 존재를 슈퍼히어로로 일시적으로 변형하는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도시는 독특한 공간이 된다.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은 일시적으로 변형되고 변화하여, 길거리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한다.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행동이지만 이러한 행동이 도시를 독특한 공간으로 만든다. 자칫 단순하고 식상할 수 있는 도시라는 배경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해석하셨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한편,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며 신혜린 교수님과 관련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눌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영화 <Black Panther>가 흑인 커뮤니티에는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지만, 영화가 아시아인을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해당 영화에서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배우가 한국인 배역을 맡아 논란이 되었었다. 한국어를 고증하려는 노력, 인종이 가진 문화를 존중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라 아카데미 3>을 떠올렸다. 1화의 첫 장면부터 한국 지하철 고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욱일기 문양을 소품 디자인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이 작품에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데도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제작할 때 문화를 소품으로 써서는 안 된다. 어떠한 문화를 차용하고 싶다면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아직, 특히 아시아권 문화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모든 일정 중 가장 좋았던 일정을 꼽으라면 단언 Scott Bukatman 교수님과의 시간을 꼽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수님께서는 영화 <Black Panther>를 중심으로 슈퍼히어로의 육체와 인종, 특히 흑인 커뮤니티에서 영화가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셨다. 한편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디즈니에서 영화 <인어공주>의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게 논란이 되고 있다. 붉은 머리칼을 가지지 않은 인어공주를 인어공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과 인어공주가 꼭 붉은 머리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이다. 양측의 주장을 모두 읽어보던 중, 한 외국인이 남긴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붉은 머리로 놀림 받던 본인이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덕분에 더는 놀림 받게 되지 않은 것처럼, 흑인 어린이들도 영화 <인어공주>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흑인 어린이들의 반응을 모아둔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인어공주가 자신과 같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어공주는 슈퍼히어로가 아니지만, 인어공주의 육체 역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힘을 가진 셈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인어공주의 육체가 가진 힘과 흑인 인어공주의 등장에 따른 흑인 커뮤니티의 반응 등을 생각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들은 후에도 교수님의 견해를 생각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셈인데, 이 과정이 정말 즐겁고 유익했으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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