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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Dec 31. 2023

론지누스의 창

옆집의 택배 보관함이 열렸어. 항상 지나다니는 지름길이었는데 이것저것 눌렀더니 문이 열리는 거지. 사실은 열려있던 상태였는데 말이야. 아이는 자신의 행위로 문을 열었다고 인식했던 모양이야.

 




비밀번호가 뭘까?






진료를 보고 약국에 오니 약국 앞에 약 보관함이 있네. 비밀번호가 뭘까 고심한 끝에 벽에 붙어있는 KT텔레캅 콜센터 번호를 눌러보았어. 하지만 열리지 않았어. 아무도 약을 찾으러 오지 않아서야. 요즘엔 약도 배달하는 시대야. 일요일에도 현관 문 앞에서 약을 받을 수 있거든. 코로나 시기 때부터 성행했어. 당번 약국이 어디인지 일일이 확인하고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조차도 불편했던 거지.


아빤 요새 일부러 잽을 날리고 있어. 엄마와의 사이가 데면데면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사람들은 이 걸 '스몰토크'라 하더라고. 엄만 여전히 엄마스러워. 노력없이 얻게 되는 청춘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어떨땐 예수처럼 보이기도 해. 아이를 낳아놓고 '다 이루었다'는 태도를 보이면 어디선가 창이 날아올 것만 같아. 아빠의 이름은 론지누스, 엄마와는 운명처럼 만나 결국 옆구리에 창을 겨누지.


처음엔 잽처럼 날려볼 심산이었어. 신의 아들처럼 행세하는 이가 피를 흘릴지 의문이었거든. 매일 술을 마시기에 피 대신 술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해 보았지. 그러나 택배보관함에 들어있던 건 여전히 택배더라고. 사람의 몸엔 피가 들어있고 그는 엄연한 사람이었어. 가끔 신격화된 사람들이 나타나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행동에 '신의 한 수'를 운운하지만 신은 바둑을 두지 않아. 내 입장에선 그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가끔씩 열려있어. 기도만 하면 신의 가호가 배달음식처럼 집 앞으로 찾아오기만을 바라는 세상이야. 폭설이 내린 오늘 론지누스는 배달을 나가지 않았어. 골목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걸 보고 겁이 난 모양이야. 3천 원을 벌려다가 주차된 차를 들이받으면 30만 원을 물어주어야 하니까.


다 이루었단 시기는 언제 찾아오는 걸까? 하나도 이룬 게 없는 인간의 눈으론 이해못할 문장이네.







엄마가 시킨 심부름은 다 이루었어. 아들 데리고 병원 가서 감기 진료 받고 오라는 미션 말이야.













딸이 시킨 미션은 다 이루지 못했어. 딸기 아이스크림 두 개 사오라 했는데 이웃집 언니 오빠 줄 것도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신은 변덕쟁이야. 자기 거 포함 4개인데 왜 2개만


사왔냐고 투정이네.



"네 잔이 넘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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