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업주부다. 아내의 집안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벌이로는 부족하다 말했다.
"그 정도면 다른 일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아내는 강아지 백내장 수술비로 평소보다 생활비를 적게 주자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아닌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권유했다. 답답해 하던 아내가 그라운드로 내려왔다. 정작 본인이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에게 일절 생활비를 주진 않는다. 오히려 지난 달 200만 원, 이번 달 100만 원만 달라고 한다. 전업주부인 나는 부업으로 아이들 간식과 식재료, 아파트 관리비, 보험료를 내고 있다.
아내에 대한 기대치는 국내 주식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직장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사고사나 과로사, 복상사로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으니 미리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터이다.
설령 그대가 먼저 내 곁을 떠난다 하여도 아이들은 걱정하지 마소. 이혼을 해도 내가 데리고 갈테니 부디 당신만을 사랑해줄 좋은 인연 만나 행복하게 지내소.
주부인 나는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읽지 말았으면 하는 유서처럼 발견되지 않길 바란다.
그대 부디 사는동안 욕심을 줄이고 화를 줄였으면 좋겠소. 전 남편의 마지막 부탁이라 여겨도 좋소. 중소기업 다니는 남편의 벌이로 만족할 수 없는 그대의 삶에 미안하오. 더 좋은 조건의 신랑을 만나기 위해 내가 양보하고 돌아서야 했거늘 그렇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구료. 자식 둘 낳아주어 고맙소. 요즘엔 다들 여자들이 자식을 낳아준다고 하더이다. 큰 결심이겠지. 본인 몸이 망가지길 원하는 이들이 어디 있겠소. 그대의 희생이 있었기에 웃을 수 있었소. 자식들이 없었다면 어찌 당신과 한 평생 함께 지낼 수 있을지 막막하던 차에 큰 위로가 되었구료. 이제 물은 내가 묻힐테니 당신은 빨래나 개시오. 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할 터이니 그대는 손수 옷들과 수건을 접어 주시오. 내 목을 접지 마시게나. 부디 겨울엔 접지 좋은 신발을 신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유념하시오. 사망하오. 황망하게 떠나고 싶었으나 내 성격이 그리 주색을 밝히진 않는다오. 오해말길. 당신만을 사망하오. 마지막으로 절대 우리 합장은 하지 맙시다. 죽어서는 편히 잠들고 싶소. 그대 또한 편히 살다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