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강아지 한 마리와 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개는 다른 개들의 냄새와 먹다 버린 음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이1은 1번 놀이터로 아이2는 2번 놀이터로 향한다. 나는 개가 이끄는데로 걸었다. 나만 끌려다니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목줄을 채운 건 나였지만 아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끝려다닌다. 내가 손잡이를 쥐고 있다고 안심하지만 정작 방향을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단지를 한 바퀴 돌고나니 3동 엄마와 함께 아이들이 단지 밖 놀이터로 향하고 있었다. 재빨리 휴대전화를 들어 최근기록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며칠 내로 아내와 통화한 기록이 있다.
"지금 기부체납 공원에 다 모였어. 3동 엄마 아빠, 아이들 다같이, 당신도 빨리 내려와"
뺑소니 차량을 따라가듯 다급한 목소리의 나완 달리 수화기 너머 아내는 출동이 귀찮은듯 공원의 방향을 되물었다.
'그럼 난 언제 쉬어?'
오늘 아침 아내는 자기도 편하게 쉬고 싶다 말했다. 주말엔 집안일 좀 시키지 말아달라며 침대의 쿠셔닝을 확인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침대는 늪처럼 빨려들어가 이사하면서 버렸다. 어제 매직을 한 아내가 수줍은 걸음으로 도착했다. 단정한 가발을 쓴 펭귄처럼 보였다. 아내는 3동 엄마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은 아이들데로 어울려 놀고 3동 아빠는 아이 자전거 연습을 시키고 있다. 나는 놀이터 주위를 뱅뱅 돌며 개를 산책시켰다. 가을 운동회가 끝났어도 날이 더웠다. 목마른 아들이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로 물을 찾는다. 집에 개를 두고 나오면서 물 네 병을 챙겼다. 아내가 구입한 뽀로로 보리차다. 뭐든 한 박스씩 시키는 아내 덕에 편의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3동 부부는 신데렐라처럼 정오가 되자 배가 고프다며 외식하러 간다고 말했다. 우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시장하니 시장에 가자했다. 어제부터 과일이 먹고싶다던 아들을 데리고 망고와 블루베리를 샀다. 새로 생긴 반찬가게도 들렀다. 반찬가게는 아들이 원하는 지름길 골목과는 방향이 달랐다. 자신이 원하는 경로로 갈 수 없음에 토라졌다. 점심으로 먹을 반찬을 사고 각자 원하는 길로 집으로 향했다. 아들은 1등으로 집에 도착하는 것을 뿌듯해 했다.
눈을 감고 잠든 새벽 친구 아버지가 꿈에 찾아왔다. 지금 내 나이즈음 장사가 잘 풀리던 분이셨다. 2호선 인근 목 좋은 곳에 오락실을 운영하셨다. 나는 단골 손님으로 그 집 아들과 친해졌다. 아마도 지금 내 아들 나이즈음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한창 유행하면서 PC방이 곳곳에 생겼다. 친구는 아버지께 우리 집도 PC방으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오락실 관련 협회 일도 하셨던 터라 업장을 정리하기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듯 싶다. 더 공격적인 스탠스로 안다미로 사에서 제작한 펌프게임 기계도 구입해 두었지만 잠깐뿐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며 오락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지금은 그 많던 PC방도 보이지 않는다. 고지식한 아버지와 함께 아파트에 살던 친구는 가세가 기울면서 가로주택 정비사업에 참여할 것 같은 낡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주변 친구들에겐 딱히 그 집을 알려주거나 초대하지 않았다. 딱 한 번 가볼 기회가 있었던 건 경찰과 함께 현장확인을 하러간 때였다. 현실의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친구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 날 만날 친구에게 연락을 돌렸다. 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났다. 이야길 나누거나 서로 말없이 스마트폰만 보다 늦은 밤 헤어졌다.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던 친구는 그렇게 집에서 잠들어 버렸다.
"LG전자 다니는 구나"
꿈에서 깨고 나서야 이해했다. 친구 아버지께서 다니지도 않는 대기업 이름을 왜 언급하셨는지를 말이다. 친구가 LGU+ 다닌다고 말한 걸 LG전자로 이해하신 모양이다. 친구 누나는 삼성전자에 다닐 때였다.
살고있는 집의 형태나 동네, 보유하고 있는 차량으로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를 저울질 한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고 우월하다. 타인보다 빠르고 높이 올라야 만족한다.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더 이상 상경할 공간이 없자 이제는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 높은 곳에 있어야 멀리 볼 수 있다며 자녀를 최대한 멀리 보내려 애쓴다. 그래봐야 사면이 바다다. 윗쪽 바다로는 헤엄칠 수조차 없다. 대기업을 다녀야 행복하고 소수가 그 행복을 누린다. 의사가 되어야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자고 한다. 내수시장의 행복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비아파트 주민과의 격차를 상기시킬 높다란 펜스가 필요하다. 안전해야 행복하고 타인을 배척해야 내 배가 부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나는 내 가족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개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