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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Sep 20. 2023

고향, 지방의 재정의

불연 듯, 고향이 뭐지? 싶었다.     


네이버 사전에 쳐본다. 고.향.

연고 고故 시골 향鄕 / 연고 있는 시.골.          

잠깐, 잠깐,  영어는 hometown이지 countrytown이 아니잖아.


외국어 사전을 클릭한다.   

one's home / one's hometown / one's birthplace(집이 있는 마을, 태어난 곳)

글치, 영어는 팩트지,     


pays(지방) natal(태어난) / ville(도시) natale(태어난)

역시 민주주의의 나라 프랑스, 지방과 도시가 평등하다.     


pueblo(도시) natal(출생) / lugar(장소) de nostalgia(향수)

열정의 스페인다운 노스텔지아의 나라!     


die Heimat(본적지) / der Geburtsort(출생지)

감성이 뭐니? 글과 단어는 서류를 위해 존재한다. 독일.   


내친김에 베트남어까지 봤다.

quê hương(태어나 자란 곳) / quê hương(그립고 정든 곳) / cội nguồn(사물,현상이 생기고 시작된 곳)

개념적이다. 역시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는 근본이 다르다.

      

   

연고故 시골鄕,  

한중일인에게 뼈 속까지 깊게 새겨진 있는 농경 DNA가 느껴지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고향’이란 어감에서 ‘도시 아닌 시골’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다 이유가 있단 말이다.     



서울에서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질문은 곧, “서울 사람이에요? 아님 지방 출신이에요?”라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근데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그게 무례하거나 거북한 질문도 아니란 말이다. 도시화가 필요 없던 농경사회에서 “너 어느 시골에서 왔니?”라고 묻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니까. 문제는 1960년대 말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급속한 경제 성장이 부산물로 가져 온 지역격차에 있는 거지. 괜히 어감 가지고 곡해할 건 없는 거다. 바로 2~3세대만 위로 올라가도 우린 다 시골에서 흙 파서 농사짓고 살았었다.     


시대가 너무 달라져서 ‘고향’이란 단어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인구의 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바글바글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고향은 대체 뭘까? 지금 성장하고 있는 한 세대가 다 자라서 성인이 되면 대한민국 절반(혹은 그 이상? 이하?)의 고향이 똑같아 질 거다. 그리고 그들에게 ‘故鄕, 연고 있는 시골’은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고향을 소개할 때 서울의 구 단위로 말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점점 서울은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지고, 지방은 매크로, 즉 대규모로 싸잡아 ‘서울 외’가 되어 버리는 건가?   

  

취업 준비하던 대학 졸업반 시절에 지방에서 올라 온 친구가 그랬었다. 고향은 자기한테 인생의 마지막 보류 같은 거라고, 지금 자기가 고향에 내려가면 직장을 구하기도 살기도 편하겠지만,그건 최후의 보류로 남겨 둔다며,.. 그때 난 바로 받아쳤었다, “넌 갈 데가 있어서 좋겠다. 내려갈 때 나도 데려가라”... 그리고 나서 그 친구는 곧 좋은 회사에 취직해 서울에서 쭉 잘 살고 있지만, 그게 그 친구만 가졌던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는 게 이슈인거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하는 많은 요즘 사람들이 공감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을 ‘진지’로 삼고, 서울이라는 ‘전쟁터’에 파병되어 죽기 살기로 전투를 하며 사는 걸까? 마치 내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칸 차지하겠다고 각자 인생 내걸고 벌리는 전쟁 같다. ‘고향’이 그저 태어나 자란 곳, 향수가 깃든 장소, 본적지,,,,이런 의미면 됐지, 왜 ‘인생의 마지막 보류“로 까지 느끼며 내 집을 서울에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왜 귀향이 곧 폐전이 되는 걸까?   

   

정말 아이러니한건 이거다.

한국 사람들의 ‘워너비 홈타운’은 모두 다 서울이지만, 정작 ‘고향’이 서울인 사람은 없다는 거.     

<지방 출신, 서울 거주인>에게는 ‘인생의 보류’든 ‘전쟁터의 진지’든 간에 ‘고향’이라는 곳이 있다. 하지만 <서울 출신, 서울 거주인>에게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서울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고향은 없어요”라고... 고향이란 단어의 의미가 ‘시골’이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든지, 서울 사람들에게 정말로 마음 속에 ‘고향’이 없다. 그건 단지 명절에 고속도로를 안 타도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나만의 향수 젖은 시골이 없다는 뜻이고, 퇴각할 수 있는 나의 진지가 없다는 뜻이며 결국 내 인생의 보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서울 출생, 지방 거주인>에게 ‘고향’은 뭐여야 할까? 뭐, 역사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좌천’이라 했다, ‘귀향’이 아닌 ‘귀양’일 수도 있겠다. 씁쓸하지만 옛날 얘기를 하면 그렇다는 거다.     





이젠, 조금 더 시대가 지나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역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 본다. 또 그래야 하고, 지금은 너무 기형적이다.

고로 ‘고향’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좀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프다.     



고향 (故鄕)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ex. 내가 살던 고향.)   - 삭제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ex. 아버지는 혼자서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 삭제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ex. 현대인은 마음의 고향을 잃은 채 살고 있다.)     

                              1번과 2번은 삭제를 요청하는 바이다.     



그래서 내 마음의 고향은 서울, 양화대교이다. (이전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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