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수치로 환산해 한 줄로 쭉 세워 너와 나의 서열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사회 질서이며,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성과와 노력에 대해 국가가 보장해 주는 암묵적인 성적표라 믿는 게 한국 사회 아닌가. 그런 한국인에게 '평균이란 숫자는 의미 없다'라는 진실은 참 불편했을 게다. '내가 평균은 된다. 가만히 있으면(적당히만 살아도) 반은 간다'라는 건 국룰인데 평균이 없어진다니,
'그래 평균은 점수를 다 더해서 n으로 나누는 거니까 허상의 숫자일 수 있어. 계산으로만 존재하는 숫자인거지. 그래도 분포도에서 '중간값'은 가치가 있잖아? 상대평가로 할 때 중간 등수니 말이야, 평균값은 버리고 중간값이라 칭하자. 중간값은 사회적 통념으로 이해되는 보통의 기준이 될 수 있어.'라고들 한다. '평균이 무의미한 건 알겠으니, 중간값은 사회적 기준이 될 수 있을 거라'며 다시 세상을 도표 안에 넣으려고 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는 건 사회구성원들에게 희열과 안정을 주는 가장 강력한 체계임은 확실하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해야 얼마를 버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얼마를 지불해야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 다가서면 어느 정도 가까워질 수 있는지, 등등 사람 사이에 가장 애매모호한 '[give & take],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면 된다'는 상식 사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준은 중요하다. 또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살다 보면 몸으로 무의식으로 체득하는 게 사회적 기준, 통념이기에 그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체득한 대로 나도 평가하고 기대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상식 사전이 박박 찢어지는 건, 너무나 한 순간이었다. 너무나 쉬웠다.
605.21k㎡ 면적의 서울만 벗어나도 너무나 쉽게 달라지는 기준이었던 거, 상식이 상식이 아니라는 거,
선조들은 어떻게 이런 찰떡같은 말을 만들었을까?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만약 이 나라가 아니고 다른 나라고 이민을 갔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거다.
차로 2시간이면 가는 곳이 이렇게 내가 이해하던 세상과 다를지는 상상도 못 했다.
기준이라는 게, 통념이라는 게, 기대치라는 게, 적정선이라는 게, 가치라는 게, 내가 살고 있는 영역 밖으로 조금만 이동해도 확 달라진다는 걸, 내가 너무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예측하고 있었다는 걸 대전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편견이 없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 포용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조금만 장소를 바꿔도 혼돈, 그 자체였다. 사소한 나의 기준이 들어맞지 않고 나의 예상과 다른 피드백을 받고 끼어들고 멈추는 속도가 맞지 않고, 아... 중간값이라는 게 표본집단만 바뀌어도 아무짝에 쓸데없구나.
어떤 장소에 가서 달라지는 온도, 습도, 밀도의 환경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 내가, 판단의 기준이 다른 사회에 놓였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포용력, 융통성이라고 믿었던 나의 장점은 타이밍을 기다리는 참을성이었지 적응력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나 자신이 왜 이리 이질적인지, 내가 왜 겉도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데만 1년 반의 세월을 보낸 거다.
내 안의 평균이 '뽕~~'하고 실종되는 시간이었다.
기준은 이토록 깨지기 힘든 거였다.
그래서 다짐한다. 이제는 기준이란 걸 무의식으로도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