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골목스타
손 원
두 돌 맞은 손자는 아무에게나 잘 웃고 재롱을 잘 부린다. 오후에 손자를 안고 동네 오솔길을 걸었다. 아파트 사잇길로 잎 떨어진 가로수길 인도는 주민들의 주 통로가 되고 있다. 손자를 안고 조금 걷다 보면 이내 내려달라고 해 내려주면 어느새 저만큼 뜀박질을 하며 앞서 나간다. 조금 후 낯선 중년의 남자를 만나자 "할버지"하며 씽긋 인사를 한다. 다소 무뚜뚝해 보이는 그는 활짝 웃으며 "그래, 귀엽구나"하며 지나쳐 간다. 이번에는 쉰 살쯤으로 보이는 여성 한분 을 만나 "할머니"하며 말을 건넨다. 그분은 다소 어색 해 하며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가 버린다. 뒤 따르던 할아버지가 서먹해서 손자에게 말한다. "할머니가 아니고 아주머니 해야지"라고 했지만 알아들을 리 없다. 오래전 아내의 말에 의하면 "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아기가 할머니라고 하기에 어색하고 기분이 별로였어. 내가 벌써 할머니라니.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나 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세 살배기 손자가 아는 호칭이라고는 아직은 엄마, 아빠, 할버지, 할머니, 고모 정도다. 우리 부부가 양육을 하기에 같이 지내는 가족 호칭에만 익숙하다. 아기는 외출 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면 싱글 방글 미소를 띠며 다가간다. 특히 동네에서는 어디서든지 노인을 만나면 반가워한다. 만나는 노인마다 정겨운 인사를 나누다 보니 데리고 있는 할아비가 머쓱할 때도 있다. 손자가 정겹게 인사를 하면 옆에서 같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 자연스럽다. 때로는 손자의 인사에 대해 제대로 분위기를 못 맞추는 덜 띤 할아비가 되는 것 같다.
이윽고 소공원에 도착하여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할머니들을 발견한 손자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간다.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배꼽인사를 하니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래, 귀엽네"라고 한다. 아기는 저 좋아하는 줄을 금방 알아차리고 두 팔로 하트까지 한다. 할머니들의 반응이 좋으면 손자는 더욱 흥을 내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기에 나는 손자를 골목 스타로 명명했다. 엉덩이를 흔들고 손뼉을 치며 할머니들의 박수에 보답을 한다.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에 힘입어 손자는 제법 오래 재롱이 이어진다. 한 동안 재롱공연이 이어지고 할머니들은 과자를 건네주기도 한다. 집에만 있으니 지루 해 하는 손자를 데리고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동네길 산책을 한다. 이제 손자 동네 노인들에게 익숙한 아기다.
아들 내외가 직장생활을 하기에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나서부터 우리 부부가 돌보고 있다. 함께 있는 딸아이가 젖먹이 때 알려 준 배꼽인사에 지금은 재롱까지 더하여 열심이다. 집에는 동요가 나오는 장난감이 있다. 거실서 커피타임을 가질 때면 시키지 않아도 손자는 스스로 장난감 노래를 틀고 마루를 빙글빙글 돌며 재롱을 부린다. 양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나름대로 매무새를 갖추고 재롱공연을 한다. 집에서 부리던 재롱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지금은 외출을 하면 노인들 앞에서 어김없이 재롱공연에 열심이다. 타고 난 끼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집안 삼대까지 살펴봐도 잡기에 능한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아버님을 돌봐 드리려 손자를 데리고 시골에 간다. 손자는 시골 증조할아버지를 잘 따른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할버지 하면서 뛰어가 안긴다.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이 활짝 펴이며 증손자를 맞이한다. 세 살 배기가 증조부를 알아보기나 하겠냐마는 자기를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는 듯하다. 증조부 앞에서 재롱이 유난하다. 아버님은 증손자 때문에 웃을 일이 생겼다고 하신다. 애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서운해할 정도다. 그렇다고 손자는 무조건 다가가지는 않는 듯하다. 노인이면 거리낌 없이 다가 가지만 젊은이에게는 낯을 가린다. 상대가 베푸는 정도에 따라 울기도 웃기도 한다.
세 살배기 손자를 키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은 어떠 한가?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친해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뚜렷 해 지고 악인과 선인으로 구별된다. 인성의 형성은 가정, 친구, 이웃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화목한 가정, 반듯한 친구, 정이 넘치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좋은 인성을 갖추게 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육아는 물론 청소년 인성교육에 신경을 써야 한다.
후대를 짊어질 신세대 교육은 가정과 사회, 국가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 지금도 형식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얼마나 알차고 실효성이 있느냐 의문이 든다.
사회교육은 학교 교육이 전담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작금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존경받는 스승은 사라진 것 같다. 교권이 추락하여 인성교육은 도외시되고 주입식 교과교육으로 나가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 시절에는 의인도 많이 났고 성인군자도 있었다.
아기 때의 심성이 한 평생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환경이 되어 이웃과 공동체로 살아가는 세상! 온정이 넘치는 살맛 나는 세상은 이상향일까?
대설인 오늘 바깥 날씨가 따뜻하다. "아가야 외출 가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단다. 행복 바이러스를 곳곳에 뿌려보렴.(2021.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