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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원 Dec 21. 2021

쑥떡과 호박떡

쑥떡과 호박떡

쑥떡과 호박떡

손 원

 

우리 집은 연중 쑥떡이나 호박떡이 냉장고에 들어 있다. 아내와 딸은 아침 대용식으로 떡 한 조각과 갈아 만든 즉석 주스를 먹는다. 간편하고 먹기도 좋아 나도 한 때 그렇게 하다가 얼마 전에 그만두고 아침밥을 먹는다. 간편식으로 밥을 대용한다는 것이 다소 마음이 허하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딸은 그런 아침 식사가 좋다며 수 년째 해 오고 있다.

 

쑥떡과 호박떡을 연중 먹으려면 철 따라 재료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물론 쑥과 호박이다. 쑥의 채취시기는 봄 한 철이고 늙은 호박은 늦가을에 수확을 한다.

초봄에는 땅 내음을 맡고 자라 난 부드러운 쑥을 뜯어 쑥국을 끓여 먹으면 별미다. 이른 봄 부드러운 쑥 한 두 줌 뜯기가 어렵다. 포근한 봄날에 며칠만 지나면 쑥은 무성하게 자라 쉽게 많은 양을 채취할 수가 있다. 한 소쿠리의 생쑥과 함께 쌀 두되 쯤 가지고 떡집에 가면 찰지고 맛있는 쑥떡을 만들어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준다. 아내는 먹기 좋도록 소바닥  크기로 낱낱이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얼려 두고 아침에 한 개씩 꺼내 먹는다. 생쑥 떡으로 봄 한 철을 난다. 

 

봄 한 철은 생쑥을 활용하면 되지만 일 년 내내 쑥떡을 해 먹자면 쑥을 뜯어말려 놓아야 한다. 오월이 되면 쑥은 허리춤까지 자라고 맛도 써서 그냥 먹을 수는 없지만 쑥떡을 해 먹기는 그만이다.

매주 가는 시골에는 봉답 묵논이 더러 있다. 거기에는 쑥대밭이 되어 있지만 쑥 채취를 하는 사람도 잘 없는 듯하다. 어지간히 채취한다고 해도 무진장 자라는 쑥을 다 채취하지 못할 정도다. 아내와 나는 쑥대가 올라오기 전에 그곳으로 가서 억센 쑥을 마대에 가득히 잘라 온다.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짜기라 머리가 쭈 빚 서기도 한다. 가끔 한 발 앞으로 지나가는 뱀을 보기라도 하면 뒤로 열 걸음은 도망친다. 그러고도 계속 채취하다 보면 부스럭 튀어나오는 개구리 한 마리에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대 가득히 채취한 쑥을 트렁크에 싣고 아파트로 온다. 

 

마룻바닥에 비닐을 깔고 마대에 담긴 쑥을 쏟아부으니 산 만한 쑥 무더기가 된다. 잡티를 가려내고 쑥을 다듬는다. 쑥의 잔털이  콧속을 간지럽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마무리한다. 그런 다음 뜨거운 물에 대쳐 물기를 뺀 다음 일부는 냉동실에 얼리고 일부는 햇볕에 말려서 창고에 보관한다. 적어도 세 번은 쑥떡을 해 먹을 수가 있다며 아내는 좋아한다. 

 

봄이 무르익을 즈음 호박을 심는다. 호박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를 직파하기도 하지만 작년에는 모종을 키워서 이식을 했다. 다소 많은 양의 모종이어서 밭 주변  곳곳에 모종을 심었다. 애호박을 실컷 따먹고 일부는 그대로 두어 익은 호박을 땄다. 시골 곳간에 제법 많은 늙은 호박을 넣어 두고 매주 한 두 개씩 가져다 호박전을 붙여 먹고 있다. 아내는 오늘 큰 호박 하나를 잘랐다. 잘 익은 누런 속살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작게 토막 낸 호박과 쌀 서 되를 떡집에 가져갔다. 오후 늦게 떡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당분간 호박떡으로 아침 ㅅ대용식을 한다고 했다.

 

쑥이 떨어진 지금은 늙은 호박이 넉넉히 있으니 호박떡 한 두 번 하면 봄 까지는 충분한 것 같다. 내 어릴 때만 해도 겨울을 나는 데는 쌀이 넉넉하면 되었고, 늦봄에 보리를 수확하여 가을 추수 때까지 버틸 수 있으면 충분했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은 음식도 골라먹는다. 베이비 부머 세대로서는 크나 큰 변화임을 느낀다. 배불리 먹는 것보다 어떻게 먹어야 건강식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넘치는 영양섭취가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당뇨병, 고지혈증 등 성인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가려 먹여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도 메뉴 선택에 민감하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에 문제가 된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고 충분한 운동을 한다면 먹거리에 민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한 평범한 식사가 최고의 보약이 아닐까?

 

아내와 딸은 체중 증가에 많은 신경을 써기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보다는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먹고  체중조절도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체질적으로 살이 찌지 않는다. 육십 평생 과체중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영양이 풍부하고 입맛에 맞으면 된다.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이 들어 체중이 다소 늘어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게는 쉽지가 않고 오히려 체중이 줄어드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나는 떡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아내와 딸이 아침 대용식을 한다기에 나는 떡 재료를 마련하는데 힘을 보탠다. 떡 재료뿐만 아니라 믹스기에 넣을 재료에도 신경을 쓴다. 매년 철이 되면 아로니아와 블루베리를 구입하여 냉동실에 보관한다. 그때쯤이면 슈퍼마켓 진열대를 눈여겨보고 좋은 재료를 구입 해 오기도 한다. 값비싼 식재료가 아니기에 식재료 구입에 인색하지 않아도 된다. 봄이 되면 지천에 널린 것이 쑥이다. 한 겨울에 쑥 한 줌은 금 쑥이다. 시기가 다를 뿐 쑥 자체는 몸에 좋은 금 쑥 임에는 틀림없다. 금 쑥을 많이 준비하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호박도 마찬가지다. 모종을 듬뿍 마련하여 밭가에 심기만 하면 큰 힘들이지 않고 잘 익은 호박을 넉넉히 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창고에 쌀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또 쑥과 호박은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곤 한다. 거덜 나기 전에 충분히 마련 해 두는 것이 가장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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