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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비 Jul 26. 2022

첫 스케치

태초의 그림을 소개합니다

    갑자기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뜬금없는 질문이 요 며칠 머리를 스쳤다. 그림이라고는 학교 미술시간 외에 낙서조차도 그리지 않았던 나인데 무슨 자극이 있었길래 새삼 그림을 그리겠다고 펜을 잡았던 걸까?

    사실 그림을 그리진 않았지만 디자인 관련 일을 3년 정도 하긴 했다. 웹디자이너로 입사해 홈페이지나 베너, 포스터, 상세페이지 같은 것들을 포토샵으로 디자인하는 업무를 했었지만 사실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여기저기 예쁜 소재를 가져다 붙여 만든 짜깁기 그림놀이 정도였다. 이미지 소스 사이트에 있는 다양한 소스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거지 내 손으로 직접 그린다거나 창작활동을 한 것은 아니어서 전혀 그런 쪽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 후 디자인과 관련 없는 직업을 전전하다 보니 서른이 넘었다. 지금은 엄마와 작은 가게를 꾸려 운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 가게다 보니 남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조금 여유가 생긴 모양. 생각보다 가게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때의 나는 아마도 뭔가 취미가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언어 공부, 뜨개질 등 취미 관련된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어, 중국어 책도 사놓고, 뜨개질바늘도 세트로 구비해 시도해봤지만 그 흥미가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가게에 일하는 게 따분했던 어느 날. 갑자기 눈에 종이와 볼펜이 들어왔다. 뭔가 끄적여보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막상 종이와 펜을 잡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쓸 말도 그릴 그림도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떠오른 별이 얼굴. 별이를 한번 그려볼까? 그리고 생각난 남동생이 찍어둔 안경 쓴 귀여운 별이 사진. 별이라면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의미도 있고!

    그러면서 난생처음으로 푹 빠져 그림을 그려봤다. 그것도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쓱싹쓱싹 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 시선과 손만이 사진과 종이를 오가며 하나하나 모양이 갖춰져가고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되었고 그 그림을 바라본 첫 느낌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뽑으라면 단연코 처음 그린 이 그림이라 말할 것이다. 여러 번 수정해서 이리 삐뚤 저리 삐뚤에다가 서툼이 묻어나는 그림이지만 이 자체 만으로 이 그림은 그냥 별이었다. 아마도 아무런 꾸밈없이 오로지 별이만 생각하고 애정 하나만으로 몰입해서 그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그림은 지금 프로필 사진이나 대표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첫 그림을 대체할 그림은 다시 그리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단순한 취미 찾기에서 시작해 이젠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준 내 첫 그림. 이제는 나만의 그림체가 확립되어 가고 점점 캐릭터 성을 찾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심을 항상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소중한 첫 그림과 그 마음가짐만큼은 잊지않고 항상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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