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쉬면 영원히 쉬는 거야…
권태 [倦怠]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이른바 권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툰을 연재하기 어려워졌으니 툰태기라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싫증이 난 것은 아니다. 뭐랄까...? 너무 그리고 싶은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소재가 떠올라도 어떻게 그려야 좋을지 어떤 구도로 그릴지 도무지 각이 잡히지가 않는다. 그리다가 손 놓고, 그리다가 손 놓고를 며칠 째... 기분이 이상하다. 꼭 그려야 한다?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얼마 전 SNS 인스타 툰을 그린 지 1년이 되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1년 동안 평균 이틀에 한번 꼴로 업로드를 했다. 소소한 이야기부터 다소 깊은 별이의 이야기까지... 제법 읽을거리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닥친 툰태기에 어쩔 줄 모르는 내가 답답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고민하다가도 금방 머릿속을 정리하고 슥슥 잘 그려졌었는데 지금은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슬슬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 짜증이 나지? 누가 꼭 그리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다. 이걸 그린다고 당장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 힘들까? 왜 고민이 되지?
갑자기 찾아온 더위 때문일까? 그럴지도... 요즘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적응 못한 내 하찮은 체력이 머리를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하기엔 너무 에어컨 밑에서 시원하게 있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SNS 팔로워 수가 줄어들까 봐? 그럴지도... 거의 매일 업로드하면서 많은 작가분들과 팔로워들이 보내주는 좋아요와 응원 댓글로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인정받는다는 느낌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데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나도 모르게 생겼을지도 모르지... 휴식이 부족했나? 그럴지도... 이런 모든 생각을 종합하니 제대로 쉬지를 않았던 것 같다. 같은 일을 1년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터. 이런 날씨에 그런 강박을 놓지 못하고 그리려 했으니 짜증이 쌓이고 고민만 늘어갈 밖에... 그래서 요 며칠 과감히 툰을 쉬기로 했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나에겐 꽤 과감한 내려놓음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못 이어나갈 뿐 그림 그리는 것까지 놓으면 영원히 쉬게 될 거 같아서 요즘 기분 전환 겸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한 장에 모든 이야기를 담으니 크게 연결고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생각하는 한 장면을 그리면 되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손 가는 데로 그려지더라. 이렇게 그리다 보면 내 안의 그림 영역이 조금 더 넓어지는 느낌도 들고 수련하는 것 마냥 잡생각이 사라졌다. 이런 시간이 필요한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림 1도 모르던 햇병아리가 버티기에 버거워서 그냥 막무가내로 넘겨버린 1년을 이제야 다듬어 나가는 기분이 든다. 아무도 모를 나만 느끼는 툰태기지만 그저 손 놓아버리지 않고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나름 현명하게 극복하려 하고 있다. 분명 모든 일에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타이밍이 온 순간 모든 것에 손을 놓은 내려놓음이 아닌 현명한 내려놓음이 꼭 필요하리라. 나 또한 그러기 위해 반드시 노력할 것이다. 모든 권태로운 분들에게 마음 깊숙이 응원을 보낸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