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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Nov 08. 2020

과연 어떨까?

육아휴직을 한 달 앞두고/ 17년 만에 찾아온 변화 앞에


11월 4일, 책상에 앉아 수업 준비와 여러 일처리를 하다가 이곳에서 일할 날도 딱 한 달 남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순간, 분주하게 타자를 치던 손을 책상 밑으로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한 달 후에 내가 백수가 된다고?  내가 일을 쉬게 된다고?




내 삶에 있어 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하는 일상이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 나는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 고등학생이면서 피아노 전공생이던 나에게 나이가 지긋이 든 교회 집사님이 다가오셔서는 피아노 반주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시작된 피아노 과외. 하나씩 학생이 늘어갔고 대학생이 되면서 피아노 반주 (싱어, 앙상블, 합창단, 미국 교회 예배 정반 주)를 하게 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피아노 학원에서 일하면서 주말에는 동경하던 빵집 아르바이트 마감조로 일했다. 그러다가 영어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초등학생 영어 과외를 시작으로 성인 스피킹 영어 과외, 부모님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5살 미국 여자아이 피아노 과외까지 했다.


         

일은 나에게 친구이자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내성적이라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언어장벽으로 힘들 때 일을 함으로 느껴지는 성취감은 실로 엄청났다. 오랜 외국 생활을 어쩔 수 없이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힘들 때 나에게 다가온 건 사람이 아니라 일이었다. 오랜 솔로 생활에 외로울 때 나를 위로 해준 건 일이었다.        


   

일은 나에게 인간관계보다 오히려 쉽고 간단했고, 내 피난처였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남편에게 한 이야기가 있다. “오빠, 내가 왜 일을 더 좋아하는 줄 알아? 일은 최소한 내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 돌아온다.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 내가 열심히 하니까 수업도 많이 주고, 강사로 많이 인정받았어. 근데 인간관계는 아니야. 내가 정성을 다해도 그 사람이 내 말을 오해하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면 난 나쁜 년이 돼. 그게 너무 힘들어. 왜 그러면서까지 사람과 관계를 해야 해??”

남편을 만나기 전, 소개팅에 나가도 상처만 받고 오기 일쑤였던 나는 엄마에게 “아무리 예쁘게 하고 나가도,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맘에 들어하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하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해?”

사람에게 치이고 힘들 때 구석으로 숨어버리는 대신,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해왔던 지난 5년간의 힘든 소개팅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일을 선택했었다. 그래서 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이더라도, 아파서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중간에 링거를 맞고라도 일 하러 나갔다.     



      

그래서 행복했지만 몸이 아프고 힘들 때가 많았다. 주 7일 일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일을 조금은 줄이고 여유를 갖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이야기해줬지만 못 들은 척했다. 이것을 놓으면 내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이 전부인 나에게 일을 줄이고 여유롭게 살라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인들의 조언은 일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들렸다. 그만큼 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강했던 시기였다.           



그런 내가 다음 달 이맘때면 일을 쉬게 된다. 내 입으로 “제가 11월 말까지 일을 하고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내뱉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일을 놓지 못하는 내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내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이다. 초반에 임신 사실을 알고도 일을 놓치기 싫었다. 친정엄마와 남편은 매일 왕복 1시간씩 운전해서 출근하는 날 걱정했지만 나는 일 하겠다고 고집부렸다. 하지만, 처음으로 아기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갔던 날. 조금 한 그 몸짓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심장 소리를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임신 증상 중 하나인 과호흡이 찾아왔을 때, 스트레스받거나 일이 힘든 날 유독 더 심해지는 과호흡에 소파에 누워 헉헉 거리며 울 때, 아이가 행여나 잘못될까 겁이 나서 남편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서 초음파로 본 아기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엄마 난 뱃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동요되었다. 내 몸이 많이 아파도 일을 포기하지 않던 나에게, 뱃속에 있는 아이를 보고 내 삶에 큰 전환점 하나를 맞이하게 했다.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고, 상상이 안 간다. 계획적이고 모든 일을 하기 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나는 상상이 되지 않는 미래 모습을 생각하니 괜시리 긴장이 된다.  통제해야 마음이 편한 내 삶이 이제는 더 내려놓고 흐름에 맡겨야 할 삶과 친해져야 한다니.....신기하면서 새롭다.



일을 잠시 쉬면서 휴식을 취하는 내 모습, 일을 하지 않고 육아하는 내 모습.

과연 어떨까?      

그리고 곧 태어 날 이 아기는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과연 어떨까?



글: Joy Lee

사진: https://libreshot.com/ko/coffee-and-lap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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