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著, 위즈덤하우스刊
대형서점 스테디셀러에 ‘쓰는 법’에 관한 책들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글 쓰는 사람도 많고 쓰려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우선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제목만으로는 누구든지 손쉽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용기와 희망을 주는 제목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고민 중의 하나가 ‘말하기는 쉽지만 쓰는 것은 어렵다’이다. 같은 고민을 갖고 있기에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에 낚인 것도 있지만 내가 쓰는 방법과도 얼추 비슷하기에 공감이 가는 제목이기도 하다.
말주변도 없고 말수도 적었으나 커다란 불편은 없었다. 보고서로 말하는 보직이었다. 재직 중 기술직 중에서 보고서를 잘 쓴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쓰는 것으로 인해 본사 근무를 많이 했으며 진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품질, 교육, 안전, 기술, 연구분야 기획을 담당했으니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다 보니 영역이 넓어져 전체 직원들에게 보내는 안전편지, CEO연설문, 신문칼럼, 심지어 혼사 관련 편지도 쓰게 되었다.
물론 회사 보고서를 잘 쓴다는 것과 이 책에서의 말하고 쓰는 것과는 같을 수 없지만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근거되는 수치와 법적, 기술적 근거가 바탕이 되는 회사 보고서라지만, 상대방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논리 전개방식은 같다고 생각한다. 회사 기획보고서도 말하듯이 썼다. 오늘은 프로에게서 ‘말하듯이 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들어가는 글: 말과 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잘 쓰려면 잘 말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잘 써야 한다. 말과 글은 서로를 견인하고 보완한다. 쓴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써야 한다. 말하듯 쓰고 쓰듯 말해보라.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하고 말로 쓴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말을 잘해야 하고, 말을 잘하고 싶으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쓰기 위해 공감하라
쓰기는 대상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쓰려면 우선 이해해야 한다. 이해의 대상에는 처지, 사정 같은 이성영역과 심정, 마음 같은 감성 영역이 있다. 이 둘을 이해한 상태를 ‘공감’이라고 한다. 사람, 사물, 사건, 삶에 공감하는 정도, 정서적 감응력이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시인은 ‘대추 한 알’과 ‘연탄재’에 공감한다. 소설가는 ‘성웅 이순신’이나 ‘82년생 김지영’이 되기도 한다.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대상에 빙의해야 한다. 독자를 대신해 어떤 대상이 되어 쓰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재미에 제값을 쳐주자
어찌 보면 재미는 말과 글의 전부다, 재미없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듯 글도 마찬가지다. 재미없으면 의미도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말과 글이 재미있으려면 사람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전달되는지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글 쓰고 말하는 게 재미있고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한다.
웃기는 말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몰랐던 사실, 공감되는 예기, 새로운 관점과 기발한 해석, 명쾌하게 정곡을 찔러도 재미있다. 일화나 뒷이야기 들도 재미없을 수 없다. 반전이 있거나 통쾌할수록 재미있다.
왜 두려울까
글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워서다.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내 오랜 화두다. 기업에서 17년, 청와대에서 8년, 이후에도 줄곧 글쓰기를 하는 나조차 글쓰기가 두렵다. 소설가나 시인도 글쓰기가 두렵겠지만 누가 그들에게 쓰라고 했나. 어쩌면 설렘을 두려움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어려운 대표적인 이유는 첫 문장 때문으로 첫 문장 쓰기 전이 가장 두렵다. 어떻게든 안 써보려고 뇌가 마지막 발악을 하지만 뇌를 이기는 방법은 무턱대고 기습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령 피우지 못하도록 일단 쓰기 시작하면 시작이 반이다.
많이 안 써봐서 두렵다면 잘 쓰려하지 말고 그냥 쓰면 된다. 자주 쓰다 보면 괜찮은 글을 쓰게 되고 자신감도 생긴다. 글쓰기 근육이 붙는 것이다.
독서는 글쓰기 밑천
독서는 생각을 떠오르게 하며 생각은 글쓰기 밑천이다. 또한 독서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 다양한 어휘와 문장에 익숙해지고 어떤 글이 좋은지 분간할 수 있게 된다.
독서는 쓸거리를 준다. 여행, 조사, 연구, 경험의 결과로도 쓸거리가 만들어지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독서다. 책을 읽을 때 가장 많이 건져 올릴 수 있다.
내 경험이 최고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이야기로 다 아는 얘기니까 남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둘째, 나는 모르지만 남이 아는 이야기로 내가 모르니까 슬 수 없다. 셋째, 나는 알고 남은 모르는 이야기로 이것이 내가 써야 할 이야기다. 루소의 자서전 “고백록”에 도둑질한 이야기, 친척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을 감추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글을 쓰려면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쓸 말도 많아지고 인간적이라는 평가도 얻을 수 있다.
멋지게 포장하려 하지 말자. 포장하면 화장처럼 티가 나고 꾸밀수록 느끼해하며 밥맛없어한다. 오히려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사람들은 잔잔한 이야기에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인다. 그것이 드라마보다 더 현실적이니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