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1098. 동양 철학 에세이 1권(2)

김교빈, 이현구著, 동녘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밑에서 불을 다루는 거인으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그 후 인간은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사회를 보고 화가 난 제우스는 판도라라는 아리따운 여자를 만들어 예쁜 상자와 함께 인간세상으로 내려보냅니다. 인간들의 호기심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질병과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상자 한구석에는 희망 한 조각이 남아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절벽에 묶이는 형벌을 받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게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간이 다시 생겨나고 그때마다 독수리가 다시 간을 쪼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쏘아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늘의 버림을 받았으나 인류 문화를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순자는 여러 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유사합니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대부분 모든 것의 근원을 하늘에서 찾았습니다. 만물을 낳아준 것도 하늘이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물생성의 근원이자 인간 도덕의 근원도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끊고 하늘이란 비가 오고 바람 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인간을 낳아준 존재도 아니며 도덕적인 행위도 하늘과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인간이 하늘에서 자유로워진 대신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인간의 화와 복은 오직 인간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인간의 지위와 실천을 극대화한 인문 정신의 완성이었습니다.


순자는 공자와 맹자를 이어 유가를 발전시킨 사람입니다. 순자는 조나라에서 태어나 쉰 살 무렵 제나라로 가서 가장 덕망 있는 학자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순자는 시기하는 사람들에게 참소를 당해 진나라로 가게 되었으며 진나라는 법가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ᅟ군자사상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조나라를 거쳐 초나라로 들어옵니다.

순자의 제자가운데는 법가 이론적 기초를 세운 한비자.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이사가 있으나 후대 학자들은 한비자와 이사를 유가사상가로 보지 않고 순자를 법가 사상가로 보지 않습니다. 순자는 유가와 법가의 갈림길이었던 셈이며 순자의 현실 지향적 사고가 법가 사상의 모체가 된 것입니다.

순자는 사후 불행했습니다. 송나라 이후 성리학자들은 공자의 맥을 정통으로 이은 사람으로 맹자를 꼽았고 이후는 맥이 끊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맹자는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규정한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질이 악하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습니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하다

법가는 중국 고대의 여러 학파 중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성이 강한 이론을 냈습니다. 일곱 나라로 갈라져 서로 싸우던 상황을 진나라가 통일하고 전국시대를 마감한 것은 법가이론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한비자는 순자의 성악설을 흡수해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기적 동물로 보았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이익을 탐하는 욕심으로 물들여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반가워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 이익을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하기에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 당시는 노동력이 중요한 부권 농업 사회로 아들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으나 딸은 다른 곳으로 시집가니 손실이라 생각했습니다.


법의 공정한 시행과 중앙 집권화된 관료제도, 사회의 경제적 기초의 강조 등을 통하여 한비자는 정치철학에 크게 공헌하였고 다른 학파보다 현실적인 정치관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법가사상은 자유와 자발성이 아닌 복종과 강제를 강조하여 군주 전제주의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법가는 유교의 도덕론과 결합해 중국사회를 2000년간 전제군주제로 이끈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합법적인 독재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를 합쳐 五經(오경)이라 하며, 〈역경〉이 주역입니다. 여기서 經은 본래 베를 짤 때 세로로 걸어 놓는 날줄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적은 책이라는 의미로 퍼져 나갔습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입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에 들어선 나라인데 주나라 앞이 은나라, 은나라 앞이 하나라로 은나라의 역을 ‘귀장’, 하나라의 역을 ‘연산’이라 하지만 내용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주역〉에는 64괘라고 하는 상징부호가 나오는데, 한 글자나 두 글자오 이름이 붙었고 두 종류의 부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자의 한 일자처럼 죽 그은 선이 양효이고, 양효에서 가운데가 끊어진 모양을 한 것이 음효입니다. 그러므로 64 괘는 양효와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효 6개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건괘, 음효 여섯 개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곤괘입니다. 건괘와 곤괘는 모든 괘를 낳는 모체로 우주에서는 하늘과 땅, 가정에서는 부모에 해당합니다. 음양 두 가지 부호를 세 번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괘는 8개로 기본 8 괘는 건·태·이·진·손·감·간·곤입니다.


건은 하늘, 태는 못, 이는 불·태양, 진은 우레, 손은 바람, 감은 물·달, 간은 산, 곤은 땅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상징은 대상 영역이 바뀌면 그에 따라 달라져 건은 하늘이자 아버지를 상징하기도 하고 동물 중에서는 말의 이미지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주역은 우주 만물의 변화를 음양의 변화 원리로 풀이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만물이 변화한다’라는 생각은 주역의 가장 기초되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은 사물을 보는 방법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태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직 미모를 기준으로 결혼상대자를 고른다면 미남, 미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3~40년 뒤에도 미인일지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미에 대한 자신의 기준도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미인의 기준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 사람은 평생 새로운 미인을 찾아다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만물이 변한다는 생각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지금 보이는 것을 고정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똑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모르면 세계를 바로 알 수 없다고 주역은 가르칩니다.


주역의 괘사에서는 ‘회린’과 ‘길흉’을 표시하고 있는데, 회린은 사태와 사물이 앞으로 변화해 갈 싹을 보이는 것이고, 길흉은 사태가 진전되어 점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로 확정된 것을 알려 줍니다. 주역을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흉한 결과를 예고하면 반성·경계하고, 길한 결과를 예고하면 그 방향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나아가 훌륭한 연구자는 회린 초기에 더욱 잘 알아서 대처합니다. 그러므로 주역은 결정된 미래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역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반성하고 조심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