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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1100.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1)

판정著, 이서연譯, 미디어숲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머리말: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논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유년시절의 편린 중 하나가 논어다.‘나는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 조잡한 장식화 속에 적혀있던 공자말씀 ‘吾日三省吾身: 오일삼성오신’, 제대로 된 의미도 깨닫지 못했을 텐데 뇌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중학교에서 만난 공자는 교과서에 있었다. ‘계씨가 전유를 정벌하려 하니’ 역시 뜻을 잘 몰랐다.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니 그저 건성으로 읽었을 뿐이다. 대학 3학년이었던 1995년, 다시 논어를 만났다. 하계방학캠프에 참석한 홍콩의 대학교 학생 대표가 난화이진이 쓴 ‘논어강의’를 추천했다.


유교, 불교, 도교에 통달한 난화이진 선생은 한자문화권의 석학이다. 선생은 진지한 말투는 아니지만 화법은 이해하기 쉬웠다. 강의는 이렇게 시작했다. ‘천하는 원래 두 팔보다 가벼운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왜 이리 고통받고 사는 것일까요?’ 나는 첫 부분을 읽자마자 머릿속이 명징해짐을 느꼈다. ‘원래 논어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논어강의’가 쉽게 이해되었던 이유는 강연을 그대로 기록한 강의록이었기 때문이다. 대화체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꾸밈없고 친숙한 말투로 강의를 이어간다. 논어는 그렇게 내 삶 속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학사학위를 받은 후 공영방송국에 입사했다. 몸집 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노력이 결실을 맺지 않으면 깊은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신을 다해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나 방영여부를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휩싸였다.

무기력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한 달에 일하는 시간이 고작 2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남고 수입도 낮았다. 주거비용이 높아 스트레스가 심했고 생계에 대한 불안이 커져 우울증 증상을 겪었다.

논어를 읽어볼까? 잡생각을 하느니 독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년 동안 논어를 해설한 책들을 파고들었다. 많은 학자들이 논어 해설서와 창작물을 썼다. 많은 사람의 해설서를 탐독해 나갔다. 어느 날 나는 논어에 대해 학식이 깊어진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공자는 논어를 통해 해답을 제시한다! 공영방송국에서 내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나를 지켜준 공자의 말은 바로 이것이다.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을 것을 도모하지 않는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걸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걸 걱정해야 한다.’

공자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근심을 공자도 겪었고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생사가 걸린 일들이 많았으나 나의 고통은 고작 집세와 업무에 한정되어 있었다. 논어에 대한 깨달음이 황홀하게 느껴졌다.

논어를 읽고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 심지어 방송국에 사표를 제출했을 때에도 초조함이나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았다. 내 마음이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공자의 말 덕분이다. 공자는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급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어질어야 하며, 곤궁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어질어야 한다.’


맺는말: ‘논어’에서 답을 얻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오디오북, 동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하는 ‘판덩독서’라는 서비스 프로그램을 2014년 시작했다. 창업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일로 힘들었다. 상황 변화와 불확실성은 스트레스였고 프로그램이 무용지물이 됐을 때 절망감에 빠졌다. 하지만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려 극복할 수 있었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

외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자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빠져든 사람들은 ‘판덩독서’가 사회를 위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일부사람들은 프로그램이 완벽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물론 이럴 때도 공자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기 원한다. 그런데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공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마음가짐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공자말씀이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공자는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자 인생항로를 결정해 주는 선장이었다. 현자의 배에 승선한 나는 선원의 몫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공자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이다. 논어에 빠져들수록 논어의 지혜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춘추시대 초기에 쓰인 논어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지식하게 읽는다면 시대착오적이며 죽은 학문이 된다. 지나치게 통속적이거나 고갱이를 빠트려서도 곤란하다.

이 시대에 술술 읽힐 수 있는 논어의 모습을 고민한 결과 논어를 다른 책들과 융합하기로 했다. 심리학, 물리학, 사회학, 경영학 등 현대학문가 논어의 연결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학자가 아닌 나는 논어에 대한 학술적 기준을 세울 정도로 학문적 방법론을 갖추지 못했다. 나는 그저 논어를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논어가 지금 시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려 노력했다. 나의 논어 읽기가 현대인의 삶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깨달음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내가 논어를 대하는 초심이자 원칙이며 목적이자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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