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답게 레시피를 무시하기로 했다.
손녀돌보미들이 휴가를 얻었다. 손녀를 부모에게 맡기고 추석연휴를 껴서 2주간 일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이번여행은 네덜란드에서 들어온 작은아이와 예비사위 포함, 4명이 함께 떠난다. 작은 아이와 여행 가면 별로 신경 쓸 것이 없다. 굳이 알려하지도 않지만 전체일정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번에도 언제 떠나 언제 들어오는지만 알았다. 경로, 숙소, 음식점, 렌터카, 관광할 곳 등 모두 알아서 하며, 날씨에 따라 조정도 한다. 계획을 몰라 한편으로는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백지로 만들어 쉬는 것도 방법이다. 아내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아빠를 위해 인적 드문 시골에 갔다가 교토에서는 따로 다닌다고 한다. 그것도 굿아이디어다. 교토에서 구경하고 해야 할 것들만 생각하면 된다. 교토에서 가보고 싶은 곳 두 곳은 이야기해 줬다.
아침 6시 50분 공항버스를 예약했으나 짧은 거리라 공항버스 정류장 가는 택시예약이 어렵다. 전날부터 예약을 걸었지만 콜이 없다. 2년 전에도 아내와 작은아이가 택시를 기다리다 친구에게 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짐을 버스정류장에 옮겨놓고 걸어가기로 했다. 도보 십 오분이니 먼 거리는 아니다.
인천공항 가는 길, 들판의 벼이삭이 무겁다. 요즈음 판매되는 햅쌀은 남녘에서 출하되는 쌀인가 보다. 파업으로 출국수속에 불편이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셀프백드롭” 전자탑승권을 소지하고 있는 승객들은 편하고 빠르게 짐을 보낼 수 있다. 세상은 빠르고 많이 변해간다. 인천공항에서 나고야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공항에서 나고야로 들어가는 풍경은 이국적이지만 어렸을 때 봤던 일본건물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익숙하다. 목포보다 군산근대문화거리가 일본과 더욱 닮은 것 같다.
오늘 나고야 기온 32도, 다시 여름으로 돌아왔다. 나고야에서는 저녁시간만 보낸다. 내일 온천을 가기 위한 기착지이며 차를 렌트하고 유명하다는 장어덮밥 먹는 일정밖에 없다.
호텔은 축소지향 일본 답게 콤팩트하다. 비즈니스호텔이라지만 침대길이가 폭이다. 킹사이즈 침대이나 프레임을 포함해 넉넉하게 잡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230Cm 정도 된다. 화장실과 욕실 등 있을 것은 모두 있지만 소꿉장난처럼 아기자기하다.
호텔 앞에는 ‘돈키호테’가 있으며 대관람차도 보인다. ‘돈키호테’는 ‘다이소’ 같은 상점으로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24시간 영업이라 다음날 아침 일찍 들어가 봤다. 바나나, 음료, 빵 등 식품도 있으며, 화장품, 의류, 가전, 장난감 등을 판매하는 만물상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아 다이소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장어덮밥집으로 가는 길, 나고야 시내도 구경하고 유니클로에 들렀다. 아내는 쇼퍼백, 예비사위는 반팔티를 구입했다. 한국과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한국에 없는 물건도 있고 가격이 조금 싸다고 한다. 엔화 약세 때문인지 유니클로 원조나라라 그런지 모르겠다
호텔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아츠타 호라이겐 마츠자카야점’, 장어덮밥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다. 대기명부에 수기로 접수한 후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물으니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며 10분 전 음식점 앞에 대기해 달라고 한다. 명함만한 종이에 식사예정시간, 음식점 앞 대기시간을 써서 준 것부터 매우 일본다운 풍경이다.
아이들은 30분 동안 시내구경하겠다고 갔고 부부가 식당 앞 대기 의자에 앉았다. 종업원이 육성으로 손님들을 호명한다. 대기손님 상당수가 한국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그만 음식점도 디지털화되어 화면에 입장순서가 표기되는데 반해 일본에서 그런 시스템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날로그라도 오류 없이 정교하기는 하다. 30분이 지나자 시내구경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으며 40분이 지나자 종업원이 나와 우리를 호명했다.
장어덮밥 한 그릇에 4950/6600엔이다. 장어가 많이 올라가 있는 것이 6600엔인데 작은 것도 양이 충분하다고 하여 모두 작은 것을 주문했다. 일본 음식가격이 우리나라에 비해 조금 높은 편이지만 덮밥 한 그릇에 5만 원이라는 가격이 있으니 맛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비주얼이 좋다. 장어덮밥 먹는 순서와 방법이 있단다. 1/4은 장어를 먼저 먹고, 1/4은 시즈닝을 해서 먹고, 1/4은 국물에 말아먹고... 순서에 따라 장어 한 토막씩 먹어봤는데 국물에 말아먹는 장어 맛이 덜하다.
한국인답게 레시피를 무시하기로 했다. 시즈닝으로 나온 쪽파를 솔솔 뿌려 와사비와 같이 먹으니 가장 깔끔하다. 굳이 레시피를 따르지 않아도 맛나다. 米質(미질)이 좋으며 말차도 맛나 한번 더 리필해 먹었다. 手記(수기)로 접수하고, 명함만한 종이에 식사예정시간, 음식점 앞 대기시간을 써서 주며, 대기 손님 호명하는 것을 보고 아날로그라 했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식사 후 카드 계산 종이 영수증에 수기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종이 영수증에 수기사인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날로그 강국 일본 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