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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Jun 16. 2024

878. 맹자 여행기 (신정근著, h2刊)

공자와 맹자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온다.

 이 책은 맹자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기이다. 흡사 성지순례여행같이 맹자와 관련된 모든 유적을 찾아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유교에서 말하는 ‘孔孟(공맹)’, 공자와 맹자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온다.


프롤로그: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혁명가, 맹자를 찾아가는 길

 주나라가 은나라에 이어 중원을 장악하자 ‘신하가 임금을 어떻게 정벌할 수 있느냐?’라는 반론이 만만찮게 제기되었다. 당시 왕권은 하늘이 덕이 있는 사람에게 점지해 주는 것으로 주나라는 자신에게 덧 씌워진 반란의 혐의를 지워야 했다. ‘은나라 마지막 주왕이 폭정을 자행했고 주나라도 천명을 받았다.’는 이유를 제시했으나 완전한 정당성을 얻기 어려웠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주나라가 천하를 장악하자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무언의 약속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무언의 침묵을 깬 사상가가 있었으니 그가 맹자였다.

 그는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군주는 백성을 보살펴야 하나 도탄에 빠뜨리는 폭군은 군주가 아니다. 폭군을 죽인다고 해서 왕을 죽인 반란이 아니라 범죄자를 처단한 정의의 실현이다.

 맹자는 왕 같지 않은 왕을 독재자라 불렀고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에 대해 새로운 가치 서열을 제시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 맹자는 신성한 절대 권력의 자리에 백성을 올려놓았다.


 맹자는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의 한 명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전쟁의 시대였다. ‘맹자’를 보면 국가의 곳간에는 군량미가 썩어나고 말은 배불리 사료를 먹지만 백성은 굶주려 죽어나가는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역설이다. 무엇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지 물을 만하다. 멩자는 이를 두고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는 형세’라며 분노했다. 맹자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을 잡아 먹는 시대’에 살았으니 혁명을 외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공맹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와 맹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맹자는 공자다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맹자도 충분히 홀로 빛나는 별임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그늘에 가려서 제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상 자체만을 놓고 보면 맹자가 결코 공자에 뒤처질 이유가 없다. 맹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가장 먼저 마음 心(심)을 철학의 주제로 설정한 인물이다.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철학사에서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지점이다.


 맹자 이전의 철학에서는 사람의 객관적인 행위에 주목했다. 당시에는 신분사회의 계급에 따라 규정된 행위와 코드를 준수해야 했기에 행동관찰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식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블랙박스와 같다. 행동이 ‘A 아니면  B’라는 이진법의 세계라면 마음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다차원의 세계이다.

 권력과 권위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도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맹자는 바로 외부의 힘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마음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업적만으로도 공자의 권위에 묻히지 않고 얼마든지 홀로 빛날 수 있지 않은가?  


四孟(사맹)의 도시, 鄒城(추성)

 산둥성 서남쪽 소도시 추성은 서울의 3배 크기다. 추성은 四孟, 즉 네 가지 맹자 관련 유적지인 孟廟(맹묘), 盟府(맹부), 孟母林(맹모림), 孟林(맹림)으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孟廟(맹묘)는 맹자를 기리는 사당, 국가가 공인하는 제사를 받는 곳

盟府(맹부)는 맹자의 후손들이 생활하는 공간

孟林(맹림)는 맹자 묘가 위치한 곳. 원래 초입에 亞聖林(아성림)이라는 패방이 있었으나, 패방에서 내려걸어야 하는 것이 싫어 많은 민원을 넣어 원래 위치에서 옮겼다. 묘비에는 亞聖孟子墓(아성맹자묘)라 쓰여 있다.

 孟母林(맹모림)은 맹자 어머니를 비롯한 맹부와 맹자 후손들이 묻혀있는 집단 묘역이다. 


 추성 기차역광장 근처 작은 공원 구석에 공자탄생성지비와 맹자탄생성지비가 있다. 聖地(성지)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雙聖碑(쌍성비)는 비각의 녹슨 철망 안에 갇혀있었다. 문화혁명 이전에 세워진 기념물이나 격동의 세월을 견뎠다. 추성이 맹자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맹자 홀로 띄우지 않고 공자와 짝짓는 이유는 뭘까? 공자를 떠나서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맹자의 위상과 그와 나란히 선 철학적 위상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푸춘은 맹자가 어린 시절 묘지 근처에서 장례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던 孟母一遷(맹모일천) 하기 전 살았던 곳으로 맹자고택도 있다. 


맹자만큼 유명한 맹모

 자식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孟母三遷(맹모삼천)과 더불어 유명한 고사가 斷機敎子(단기교자)다.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맹자를 보고, 반가워 먹을 것을 챙겨주기 전에 ‘배움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느냐?’ 물었다. ‘이전과 비슷합니다.’라는 대답에 맹모는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자신이 보고 싶어 일찍 온 자식을 반기지 않고 두서너 걸음 떨어져 자식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색한 순간이다. 맹모는 맹자가 오기 전에 짜고 있던 베를 자르기 시작했다. ‘네가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은 엄마가 베틀로 베를 짜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은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길게 생각하여 해야 하는 것을 묵묵히 해야 한다.’ 맹자는 그 길로 학교로 돌아가 이후로는 게으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선경국전’에 담긴 맹자의 왕도사상

 정도전은 조선의 일개 개국공신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지 왕의 성씨를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전은 새로운 사회 조선을 설계하고 디자인했다. 그 설계도가 바로 ‘조선경국전’이다. ‘조선경국전’은 혁명의 완성을 위한 조선의 헌법이었다. ‘조선경국전’의 원칙 부분  正寶位(정보위: 왕의 자리를 정하는 것)에 이렇게 밝혔다.

 군주의 자리는 귀하다면 귀하고 높다면 높다. 하지만 세상은 아주 넓고 국민은 참으로 많다. 만에 하나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걱정할 일이 생길 것이다. 국민은 개인적으로 아주 약한 존재이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아주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지식으로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협조하고, 마음을 얻지 못하면 떠난다. 떠나거나 함께 나아가는 차이는 털끝만큼의 틈도 끼어들게 없다. 이른바 마음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 구차스럽게 놀거나 도리를 어기고 명예를 구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다움의 사랑으로 가능하다. 군주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서 사람에게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리하면 사방의 사람들이 모두 군주의 일거수일투족에 기뻐하고 자신의 부모처럼 우러러볼 것이다. 즉 오랫동안 평안하고 부유하고 존귀하고 영화로운 즐거움을 누리고, 위험하고 멸망하고 뒤집어지고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다움의 사랑으로 군주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의 위계를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의 마음과 신뢰는 무엇으로 얻는가? 그것이 바로 仁(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선경국전’은 읽어보지 않았어도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 조직의 리더들은 그 사실을 가끔, 아니 자주 잊는다. 그리고 항상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커다란 문제이자 세계적 병폐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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