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관著, 홍익출판사刊
스케쥴링을 담당하는 막내가 한적하고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고 사람 붐비는 곳은 질색하는 아빠 취향을 감안해 고른 여행지는 그리스 크레타 섬이다. 물론 아내와 아이는 정신없이 붐비고 패션이 있는 뉴욕 같은 곳을 좋아한다.
내게 부여된 미션은 그리스 역사를 공부해 가는 것과 작은 아이가 먹을 커피를 로스팅하는 것이다. 생두구입하는 약간의 돈과 책 읽고 서머리하는 노동력을 제공했다. 책값은 수원시립도서관이 협찬했으니 해외여행은 누워 떡먹기다.
들어가는 글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형상을 따라 신들을 빚어냈다. 그리스 신화의 다양한 신들은 인간의 마음이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를 읽으면 인간 내면세계를 읽을 수 있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끝없이 일을 저지르는 신들은 벌거벗은 인간 모습 그대로다. 올림포스의 주신 12 신은 곧 인간 마음이 빚어낸 12가지 빛깔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신을 창조하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
타고난 바람둥이로 아내이자 여왕인 헤라와 불화가 많다. 형제지간인 포세이돈, 히데스와 천하를 삼등분하여 포세이돈은 바다, 히데스는 지하, 제우스는 하늘을 맡게 되었고, 땅은 공통 통치하기로 했다.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페를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는 황금빛 소로 변신했다. 에우로페가 호기심에 황금소 등에 올라타자 소는 에게 해를 건너 크레타 섬으로 달렸다.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제우스는 공주와 사랑을 나눴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크레타의 영웅인 미노스와 그의 형제들이다.
아르고스의 공주인 다나에게 접근해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자른 영웅 페스세우스로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다.
남자는 많지만 사나이가 드문 요즈음 제우스는 내 속에 잠자고 있는 ‘당당한 자아’이며, 생식과 정복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이고 강력한 본능이기도 하다.
저승의 지배자, 히데스
히데스는 투명인간처럼 변하는 검은색 투구를 쓰고 다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죽음은 보이지 않지만 늘 살아 있는 자의 곁을 맴돌며 호시탐탐 덮칠 기회를 노린다. ‘히데스’는 그리스어로 ‘보이지 않는 자’이며 보이지 않기에 죽음은 더욱 두렵다.
아버지 크로노스와 어머니 레야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시간’이란 뜻으로 자식들이 태어나는 순간 바로 잡아먹었다. 태어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의 속성 그대로다. 히데스도 잡아 먹혔으나 막내 제우스에 의해 아버지 배 속에서 토해져 살아났다. 그 뒤 제우스와 형제들은 아버지와 신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한다. 승리한 형제들은 제비 뽑기로 세상을 나눠가진다. 저승을 다스리기에 올림포스의 12 신에는 들지 못한다.
저승의 강인 스틱스는 제우스도 거스를 수 없는 곳, 곧 죽음의 불가역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불가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리스신화에서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는 스틱스 강을 건넜으나 살아 돌아온다.
히데스는 오늘도 검은 투구를 쓰고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으나 인간은 죽음을 남의 일 인양 여긴다. 주위사람이 죽는 것을 봐도 자신이 그렇게 죽을 운명이라고 믿지 않는다. 자기만은 예외인 듯 살아간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제우스 다음가는 서열 2위, 괴물 메두사와의 사이에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낳았다. 포세이돈의 무기는 ‘트리아이나’라는 삼지창으로 비와 바람과 구름을 일으켜 휘몰아치면 태풍이 된다. 열대바다에서 태어난 태풍이 예측불허다. 사랑의 열정이 그렇듯 태풍은 스스로 기진맥진하여 소멸할 때까지 아무도 멈출 수 없다. 포세이돈이 다스리는 감정의 바다도 스스로 잦아들 때까지 누구도 잠재울 수 없다. 포세이돈은 무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포세이돈과 지혜의 신 아테나가 그리스 중부의 한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맞서자 다른 신들이 중재에 나섰다. 시민들에게 가장 이로운 것을 선물하는 신이 그 도시의 수호신이 되라는 것이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바위를 쳐 바닷물처럼 짠 샘물이 솟게 하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자라게 했다. 시민들은 이 올리브를 좋아했으며 그 도시의 수호다가 아테나가 되고 도시 이름은 아테네가 되었다.
포세이돈은 올림포스 신들 중 최고 연장자이나 사려 깊지 못했다. 그는 파도가 으르렁거리듯 아주 사납고 성급하게 흥분한다. 제우스를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음모에도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벌로 트로이 성벽을 쌓게 된다. 트로이 왕이 성벽을 쌓은 것에 대한 보수를 거부하자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편을 들었다. 막상 트로이가 함락되어 자기가 쌓은 성이 파괴되는 것을 본 포세이돈은 다시 마음이 변해 귀향하는 그리스 군들을 바다 위에서 처치한다. 트로이 함락에 공을 세운 오디세우스의 귀향도 방해해 10년간 바닷길을 떠돌게 만든다.
포세이돈이 포효했던 바다는 지금도 변함없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 또한 무수한 세월과 무관하게 그대로 출렁거린다. 몸은 늙어도 감정은 늙지 않는다. 사랑도 미움도 분노도 변함없이 수많은 인생을 질풍노도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내 마음의 포세이돈
복수의 화신, 헤라
결혼과 정절의 수호신으로 남편 제우스와 관계한 여성들과 자식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가한다. 아버지 크로노스와 어머니 레야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남편 제우스와는 남매관계다. 제우스와 헤라는 전쟁의 신 아레스, 출산의 신 에일레이티이아를 낳았으며 남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폭군 같은 제우스의 부정에 불만을 품은 헤라는 포세이돈과 아폴론의 도움으로 제우스를 소가죽 끈으로 묶고 100개의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쿠데타 성공 일보직전 제우스를 연모했던 바다의 요정 데티스가 일을 망친다. 땅속 깊은 곳에 사는 팔이 100개인 거인을 데려와 제우스를 구출한다. 제우스는 헤라를 포승에 묶어 하늘에 매달아 놓는 분풀이를 한다.
그 후 헤라는 제우스에 대들지 못하고 제우스가 사랑했던 여인들을 응징하기 시작한다. 제우스는 사냥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요정인 칼리스토를 범했으며 아들을 낳았다.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젊은 사냥꾼과 마주친 칼리스토는 아들임을 알아봤지만 사냥꾼은 창으로 찌르려 했다. 이것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이들을 끌어올려 큰 곰 자리와 작은 곰 자리라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헤라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에게 두 별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 결과 두 별자리는 다른 별자리들과 달리 밤이 되어도 바다에 들어가 쉬지 못하고 북극성 주위만 돌게 되었다.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화덕을 지키고 가정의 질서를 담당하는 여신이다.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자존감을 높이라고 한다. 자존심은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헤스티아는 자존감이 충만한 여신이다. 제우스와 남매관계이며 아버지 크로노스와 어머니 레야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 중 맏딸이다. 늘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며 집안의 화덕만 지키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기에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으며 올림포스의 다른 신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다. 그러나 남들이 몰라준다 해도 개의치 않고 늘 자존감으로 충만해 홀로 빛났다.
제우스가 아들 디오니소스에게 올림포스 12 신의 지위를 주고 싶어 했을 때 헤스티아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다. 그녀의 은은한 매력에 반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지만 모두 거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산다. 제우스는 헤스티아에게 모든 인간의 집에서 중심의 자리에 차지하고 인간이 바치는 재물을 가장 먼저 받는 영예를 허락했다. 고대 그리스 화덕은 집안의 중심에 있었다.
불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듯 헤스티아같이 자존감으로 충만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가 알려지고 이름이 저절로 높아진다. 반면 자존심이 센 사람은 고슴도치 같아 자존심을 꼿꼿이 세울수록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대지에서 자라는 곡물, 특히 밀의 성장과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신, 데메테르는 땅을 뜻하는 De 엄마를 뜻하는 Meter가 합해져 ‘땅의 엄마’라는 뜻이다. 아버지 크로노스와 어머니 레야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남매 중 둘째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눠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페르세포네의 불행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주목할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로디테가 아들 에로스에게 말했다. ‘요즘 우리를 우습게 보는 여신이 있다. 아르테미스가 처녀로 지내며 우리를 멸시하고 있고 페르세포네가 그를 흉내 내며 미모를 뽐내고 처녀로 지낼 태세다. 하데스에게 사랑의 화살을 날려 보내거라.’ 하데스는 바로 페르세포네에게 반해 납치했다.
데메테르가 상심에 빠져 손을 놓고 저주를 내리자 대지의 생물들은 시들어갔다. 가뭄과 홍수가 되풀이되며 대지는 황무지로 변했고 동물과 인간들이 죽어나가자 올림포스에 올리는 재물도 줄어들며 신들의 세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페르세포네의 아버지이기도 한 제우스가 데메테르를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제우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하데스에게 보내 페르세포네를 풀어주라 했으나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저승의 음식인 석류를 먹였다.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우스는 고심 끝에 페르세포네가 8달은 지상에서 살고 4달은 지하세계에 사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데메테르는 8달 만이라도 딸과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해 대지에 내린 저주를 풀었다. 이렇게 되어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지옥에서도 딸을 건져오는 위대한 모정은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관장하며 비너스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사랑에 가슴앓이가 있고 아픔과 슬픔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것은 비너스의 저주 때문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아들인 크로노스가 어머니 부탁으로 아버지 성기를 잘라 바다에 던지자 하얀 거품이 일어났다. 그 거품에서 태어난 여인이 아프로디테로 한순간의 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는 미와 욕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신중에서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다. 절름발이이자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싸움을 하다 하늘에서 떨어뜨려 절름발이가 되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든 제우스가 그 보상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짝으로 주었다.
아프로디테의 별명은 ‘여자 제우스’로 바람둥이였다. 신과 인간들을 상대로 바람을 피웠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답게 투명그물을 침대에 쳐놓고 나가자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가 밀회를 즐겼다. 헤파이스토스는 불륜 커플을 나체로 사로잡아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공개해 망신을 주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계속 정을 통해 에로스 등 10여 명의 자식을 낳았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배웅하며 입맞춤하다 화살에 가슴을 찔렸다. 마침 숲에 사냥 나온 아도니스를 보자 바로 사랑에 빠져 졸졸 따라다니며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사랑에 눈을 뜨지 못한 소년으로 사랑보다 사냥이 좋았다. 아프로디테가 맹수를 조심해라 했건만 멧돼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 송곳니에 찔려 죽었다. 아도니스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던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가 흘린 피 위에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를 뿌렸더니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바람이 불면 꽃망울이 열리고 또 바람이 불면 꽃잎이 지고 마는 연약한 꽃은 아네모네 즉 바람꽃이다.
아도니스를 품에 안으려던 아프로디테의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미의 여신의 마음을 훔쳤던 미소년 아도니스는 훅 불면 떨어지고 마는 바람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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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사냥, 숲, 달, 처녀성과 관련된 여신이자 출산을 돕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여신이다. 제우스와 레토사이에 태어난 태양의 신 아폴론의 쌍둥이 누나다. 헤라는 레토를 질투하여 해가 비치는 곳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했으나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바다에 가라앉았다 솟아오른 섬에서 쌍둥이를 출산했다. 아폴론은 태양, 아르테미스는 달을 상징한다. 아르테미스는 평생 혼자 살겠다고 제우스에게 청원해 남자들을 멀리한 채 외딴 숲에서 사냥하며 지냈다.
아르테미스를 따르는 요정들도 순결을 지켜야 하는데 제우스에게 속아 몸을 더럽힌 요정 칼리스토를 가차 없이 쫓아냈다. 아르테미스는 야생에 사는 처녀 신답게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고 화를 잘 내어 앙심을 품으면 반드시 복수했다.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사령관 아가멤논은 사슴을 사냥하다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친딸을 제물로 바친 후 원정길에 오를 수 있었다.
카드모스왕의 손자 악타이온이 사냥 나간 숲 속 깊은 곳에는 맑은 물이 솟는 동굴이 있었다. 아르테미스가 사냥하다 지치면 목욕하는 곳으로 이날도 요정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하고 있었다. 악타이온이 길을 잃어 동굴에 들어서며 여신과 요정들의 알몸을 보게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얼굴이 붉어졌고 활을 찾았으나 멀리 있어 악타이온의 얼굴에 물을 뿌리며 저주를 퍼부었다. 악타이온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고 귀는 뾰족해졌으며 몸에서는 털아 돋아났다. 사냥개 50마리가 악타이온을 찢어 죽였다.
수렵과 채취시대의 달과 숲은 경외의 대상으로 어둠 속에서 숲을 지나는 고대인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달과 숲을 관장하는 여신은 다정하면서도 두려운 경배의 대상이었다. 악타이온의 비극은 자연을 함부로 범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