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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이랑 Dec 28. 2021

암밍아웃의 난처함

누군가 당신에게 암 치료를 고백한다면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할 뿐인데, 어쩔 수 없이 암환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들은 꽤 자주 찾아왔었다.


처음엔 암환자임을 밝히는 게 거리낌이 없었다. 죄지은 것도 아니니 당당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여갈수록,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민망함과 나를 안쓰러워하는 그 표정을 캐치하는 그 순간들이 점점 쌓여가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일로, 친한 동생과 수영장을 간 적이 있었다. 한쪽 가슴에 유두 없이 가로로 큰 상처가 있으니 대중탕이나 공공시설을 가면 가리기 급급했다. 구태어 물어보는 이는 없을 태지만 모르는 이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아무튼 그날은 다소 들뜬 마음으로 동생에게 샤워실과 탈의실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가려달라 부탁을 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편한 샤워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하지만 수영장을 나선 뒤 카페에서 동생이 건넨 말이 한순간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언니, 보니까 많이 아팠겠더라.’ 나는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곧 ‘아~ 흉터?! 그랬지 뭐, 하하하’ 하며 순발력 있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 보였다. 물론 상대는 나를 위로하고자, 그 흉터가 생기기까지의 시간들을 공감해보고자 하는 선한 시도였음을 안다. 내가 나를 가려달라 자처했고 그 동생은 자연스럽게 흉터를 봤겠지만 그냥 못 본 척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긴 하다. 오랫동안 병의 그늘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 그늘에서 자라난 예민함 들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같이 아픈 사람들은 그저 그 그늘을 인정하고 내적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갈등할 뿐이다.


그러니 혹시나 주변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암밍아웃’ 혹은 자신의 오랜 질병을 고백할 때, 감기에 걸린 사람을 본 것 같은 반응을 바란다. 사실 병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우리 주변에는 병에 걸린 사람과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위로의 말을 하기 전에 꼭 한 번은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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