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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이랑 Dec 16. 2021

병원 나이 스물다섯, 암환자가 되다.

유방암 2기 진단과 전이 진단까지

27살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입원한 병실에서 침대 머리맡의 환자정보를 보니 내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 20대의 한가운데서 암환자가 되다니! 25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어이없이 실소를 터트린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4년 뒤인 31살, 폐로 원격 전이되었다는 판정을 받아야 했다. 병원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중요한 전시를 오픈했고, 대학원을 입학한 3월이었다. 바삐 준비를 하던 중 속옷에서 아주 작은 적갈색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오른쪽 유두에서 같은 색의 분비물이 나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 후루룩 검색을 하니 대강 봐도 좋지 않은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체됨을 알아차린 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욱여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 말들보다는 당장의 지각을 피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제 27살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날이 너무 좋았다. 학기가 막 시작된 캠퍼스는 그 특유의 생기와 함께 온기가 넘쳤다. 벚꽃까지 흐드러지게 피려고 했으니 오죽했으랴. 그리고 그 뒤 한 두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은 3월의 캠퍼스만큼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개인병원에서 맘모툼으로 검사한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고 그 후 대구와 서울의 대학병원을 오가며 생전 처음 해보는 검사들을 반복해서 해야 했다. 유방외과, 성형외과, 불임클리닉 등 외래를 보고 상담을 받아야 하는 진료과들도 너무 낯설었다. 어찌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지 내가 암환자라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였다. 그전에 한 번쯤은 상상해본 것 같다. ‘드라마에서처럼 암 선고를 받으면 나도 저 가련한 주인공처럼 펑펑 울겠지?’ 하지만 현실에 그런 장면은 없었다. 시간을 쪼개서 검사와 진료예약을 하고 안내지 하나에 의존해 미로 같은 병원을 쏘다녀야 하는데 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팟팟한 입원복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며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수술 날짜가 그나마 빠른 서울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다.


그렇게 우측 유방 전절제 수술을 하고 8번의 항암치료와 재건수술을 했다. 그 뒤로도 ‘타목시펜’이라는 경구약을 매일 먹었다. 그리고 완치 판정을 딱 1년 앞둔 초여름의 어느 날,  숨 쉴 때마다 명치쯤에서 찌릿한 통증을 느꼈고 집에서 가까운 응급실로 갔다. X-ray와 CT를 찍더니 서둘러 수술한 병원으로 가보기를 권유했고, 아버지는 곧장 나를 태우고 밤새 서울의 응급실로 향해 달렸다. 폐 쪽으로 원격전이가 됐다고 했다. 전이 판정을 받은 그날 아침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검진을 위해 들렸던 서울 하늘은 늘 뿌옇고 흐렸는데 그날만큼은 채도 높은 하늘에 쾌청한 날씨였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지나치게 아기자기하고 예쁜 날씨였다.


첫 진단부터 전이 진단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병과 함께 우울증이 심해졌고, 안 좋은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정말, 장편 대하드라마 같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며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특별한 일을 겪은 거라고, 내 삶이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모두가 각자의 드라마 한두 편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30대에 접어들며 이상적인 맬로 혹은 자극적인 내용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드라마가 좋아졌고, 다큐멘터리가 특히 더 좋아졌다. 이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특별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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