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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이랑 Jun 25. 2022

암 그까짓 거

긍정적, 너는 도대체 뭘까? - 환자 아닌 것처럼 살아가기

 처음 암 진단받은 순간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참의 설명을 들은 뒤, "그럼, 제가 암이라고요?"라고 되묻긴 했으나 울지는 않았다. 바로 옆의 부모님이 신경 쓰이기도 했겠지만, 슬픔 같은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실감이 안 났다. 그래서 저런 질문을 한 게 아닐까?  아무튼 그날 나는 공단에 중증환자 등록이 되면서 나라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암환자가 되었다.


최근 친한 분의 추천으로 한상도 작가의 『사라진 암』을 읽었다. 평범함 공무원 생활을 했던 저자가 전립선 암 선고를 받은 뒤 자연 치유해가는 과정과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여느 암 관련 서적처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식의 강압적인 문체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일상을 이야기하듯 전하는 편안한 글이어서 읽기 편했다. 저자는 직장동료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은 채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채식, 걷기 운동, 명상, 이미지 트레이닝 등 다방면으로 생활 습관을 고쳐 나간다. 채식은 (항암 중이라는 핑계로) 용기가 안 났다. 대신 명상과 이미지 트레이닝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책을 다 읽었을 때 마침 명상 어플의 일주일 무료체험이 끝난 직후였다. 일주일간의 무료체험이 나쁘지 않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이 좋아 정기결제를 망설이던 때였다. 과거에 우울증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나에게 명상은 언젠가 해야만 하는 숙제 혹은 만들어야 할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 숙제를 더 미루지 말자 싶어 결재를 했고 그날부터 가능한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명상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쉽지는 않다. 요즘은 이틀 건너 한 번씩 하니 아직 습관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탓인지, 어플 속 안내자의 멘트에 따라 호흡의 흐름에 집중해봐도 머릿속은 금세 여러 생각들로 차 올랐다. 하나로 시작된 생각은 곧 열몇 개의 생각이 되어있었다. 비움으로 행하는 명상이란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명상 중 잡생각이 들 것 같으면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귀여운 내 몸속 면역세포들이 칼과 방패를 들고 ‘와~!!!!’ 소리 지르며 암세포에게 뛰어든다. 암세포는 갈기갈기 찢겨 사라지고, 면역세포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환호한다. 귀에 그들의 명량하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번진다. 한편, 다른 곳의 정상세포들은 내 몸을 건강히 구성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육성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 "내 몸을 위해 힘내 주어 고마워, 오늘도 잘 부탁해. 사랑해. 늘 응원해."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덧 명상 안내자의 마무리 멘트가 들려온다.


자기 스스로에게 사랑한다느니 칭찬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낯간지럽던지! 나 혼자 있는데도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며 쌓여갈수록 나 자신을 사랑하는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따뜻한 긍정이 되어 나로부터 다른 이에게로, 스며들며 번져나간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


비탄에 빠진 암환자가 가장 많이 듣는 위로이자 조언이다. 듣는 이 스스로가 너무 비극적이라 여겨질 때는 세상 제일 쓸데없는 말이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일 것이다. 저 말을 하는 상대방의 마음은 고마우나, 한편으로 ‘당신도 이 상황이 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하며 속으로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 말은 가벼운 위로가 되어 흩어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저 말에 무게감을 느낀다. 수술, 항암, 방사선 등의 치료들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긍정적 기운으로 채우는 것도 앞의 물리적 치료들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밑도 끝도 없이 모호한, 긍정이라는 추상적 마음을 행동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을까?


대체로 환자들이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은 본인이 환 자라는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아프니까 할 수 없어.’,  ‘예전에 건강할 때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등등. 그런 생각들은 환자 스스로를 비극적 상황에 가두어 끝이 없는 비탄의 수렁으로 빠지게 한다. 각자가 타고난 성별과 특성들을 바라보듯이, 스스로가 암환자인 것 역시 그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그러고 나서 환자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 보면 어떨까? 암환자이지만 암환자 아닌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환자이지만) 이번 주 캠핑을 가겠어.’

        ‘(환자이지만) 올해 안에 한라산을 가겠어.’

        ‘(환자이지만) 글을 써보겠어.’

        ‘(환자이지만) 가죽공예를 배워보겠어.’


물론 개인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안 되는 걸 붙잡고 괴로워하기보다는 현재 몸 컨디션에도 할 수 있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본인이 환자임을 잠시 잠깐 잊고 살아가면 어떨까? 그런 경험을 쌓아 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가 환자인 것을 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은 암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은 병원에 있지만, 외출을 내어 출강을 하거나 외박을 내어 친한 친구 혹은 가족과 캠핑을 간다. 그러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하루 종일 누워 원 없이 책을 읽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서 본다.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면 웹사이트를 구축하거나 미뤄두었던 소소한 일을 한다. 얼마 전 종강을 했으니, 출강 일이었던 매주 월요일 아침 좋아하던 수영을 다시 할 것이다. 예전처럼 고강도의 운동을 할 수는 없지만, 더운 여름 수영장에서 걷는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걷는 것부터 시작하다 보면 더디지만 조금씩 수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언젠가 항암을 중단하는 날 당장 떠나겠어!’ 다짐하며 잠시 미뤄둔다. 그리고 그 다짐을 실현시키고자 긍정적 기운으로 열심히 몸을 돌본다.


 나의 친애하는 병원 메이트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50대에서 70대로 나에게는 이모뻘이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아침 식사 후 매일 있는 티타임에서 웃고 떠들며 곧잘 어울리고 있다. 서로 경험담을 나누다 보면, 각자 암에 대처하는 자세는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모두의 공통점은 있다.


Carpe diem!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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