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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씨네 Mar 15. 2022

<파워 오브 도그>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본 글은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 주인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동생 조지와 함께 목장을 운영한다. 필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묘한 매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조지가 과부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결혼을 한다 통보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온 로즈와 그의 가냘픈 아들 피터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때부터 필은 로즈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 고통으로 인해 로즈는 점차 술에 의지하게 된다. 필은 피터에게 점차 다가가기 시작하고, 피터를 볼모 삼아 로즈에게 더한 압박감을 준다. 하지만 필은 피터에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혐오의 갈림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회로부터 씌워지는 프레임(긍정의 것이든 부정의 것이든) 에서 쉬이 자유롭기란 매우 어렵다. 크고 작게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며 관계맺음을 이어나가는 가운데, 약자에게 씌워진 프레임은 혐오로 점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혐오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감독 제인 캠피온은 필과 피터라는 상당히 대조적인 두 인물을 통해서 조망한다. 

    필은 남성성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은 이러한 모습 이면에 동성애라는 내면을 숨겨놓고 있었다. 필은 20세기라는 배경 속에서(어쩌면 현재까지도) 굉장한 사회적인 치부로 여겨지는 동성애라는 자기결점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써 되려 남성성을 부각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동성애에 눈을 띄워주고 세상을 떠난 브롱코 헨리를 만난 지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성성은 그 역할을 점차 공고히 해왔다. 집 근처 드넓게 펼쳐진 산을 보고 동료들이 무엇이 보이느냐 묻지만, ‘못보면 없는 거랑 똑같아’ 라며 받아치는 필의 대사로 보여지듯, 그는 치부를 감추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결국 약자를 잡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반면 피터는 가냘픈 외모와 내향적인 성격 탓에 자연스럽게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허나 필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면서도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해 타인을 무시하지도, 동시에 사회적인 이상향과 동화되기를 택하지도 않는다. 되려 부츠 대신 흰 양말에 흰 스니커즈를 택하며 마초적인 필과 혹은 외부세계와 분명한 선을 긋는다. 그러나 피터가 혐오로부터 멀어지기를 택한 것은 아니다. 이는 필과의 대화에서 선명히 드러나는데 ‘불행을 견뎌야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필과 달리, 피터에게 그 ‘불행들은 치워버릴 존재’들로 인식된다. 이 말마따나 피터는 필을 탄저병에 걸리게 해 죽게 만든다. 자신에게, 엄마 로즈에게 그리고 새아빠 조지에게 불행을 안기는 존재를 제거해버린 것이다. 

    감독은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해서 꽤나 관조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그저 두 사람의 선택을 관객들에게 제시해 줄 뿐, 그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강압적이고 무례했던 필에게 조지의 결혼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브롱코 헨리의 말 안장을 닦으며 위로를 얻는 모습을 부여해 주며, 그 역시 혐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 비치길 의도한다. 또한 턱시도를 입고 면도가 된 채 관에 뉘어지는 그의 모습은 그러한 의도를 더욱 명백히 뒷받침해 준다. 반면 필을 살해한 피터에게는 마지막 한 줌의 미소를 짓게 함으로써 혐오를 물리치고 나아간다는, 어쩌면 다소 계몽적일 수 있는 주제로 귀결되지 않도록 비틀어준다. 

    그렇다면 본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는 ‘장갑’이라는 소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로즈가 인디언에게 가죽을 주자, 그들은 로즈에게 보드라운 장갑을 선물한다. 장갑을 낀 로즈는 필에게서 받았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느낀다. 반면 필은 어떤 작업을 할 때에도 장갑을 끼지 않는다. 그로 인해 흉터가 생기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다. 장갑으로 표현되는 어떠한 위로와 공감 같은 것이 맨손으로 혐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필에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피터가 장갑을 벗고 필에게 다가간 것처럼 거짓의 공감이 아닌, 진실된 장갑을 씌워줬다면, 구석진 곳에 놓이는 밧줄처럼 남성성이 강요되는 것이 아닌, 필이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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