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영화 <소설가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서점에 도착한 유명 소설가 준희. 그녀는 서점에 들어서며 어느 여자의 고성을 듣는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가게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고 앉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소설가에게 고성을 들려줌으로써 그녀에게 일종의 암시와도 같은 압박감을 부여한다. 그저 예전에 가까이 지내왔던 것으로 보이는, 그러나 지금은 단절된 후배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인 그녀에게 이 서점의 첫인상은 좋지 않다. 그 와중에 만난 후배 세원은 서울에서의 사람들이 피곤을 주었다고 말하면서도 이곳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앞뒤 다른, 가식적인 세원의 태도에 준희는 ‘좋아 보이네’라는 말로 일축한다. 이후 서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알바생에게서 수화를 배우는 준희. 세원과 서점 밖에서 대화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이 원하는 문장 하나를 수화로 배워간다. ‘날은 아직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아직 밝을 때 실컷 다녀보자.’ 마치 그녀의 순수성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한 이 문장을 수화로 해보면서 준희는 세원의 음성적인 개입을 차단한다. 마치 서점에 들어서면서부터 귓가를 때려버린, 어쩌면 준희의 예술적 순수성을 파괴하려는 듯한 고성을 온전히 배제시키고 싶었던 것처럼.
이처럼 준희의 하루 동안의 여정은 계속된 고성과 차단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통해서 순수한 예술적 회포를 표출하려는 준희의 마음은 늘 외부로부터 평가받고 무시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뻗쳐나간다. 준희는 세원과 알바생의 배웅을 뒤로하고 전망타워에 오른다. 그곳에서 만난 박감독과 그의 아내. 과거 작업적인 트러블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화들 위로 준희는 박감독에게 ‘악착같았다’고 말한다.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세속적인 행보에 악착같았다는 말을 던지며 그녀는 좋아하면서도 하지 않은(어쩌면 좋아하지 않으면서 좋다고 하는) 박감독의 얄팍한 수에 일침을 날린다. 그녀의 그런 말들은 박감독과 그의 아내에겐 ‘카리스마’ 있는 존재로 각인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진짜 칭찬으로 들리기엔 어딘가 작은 턱을 넘 듯, 어딘가 걸리는 저 표현을 들은 영화는 자신은 카리스마가 없다며 반문한다. 단지 순수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리곤 준희는 박감독의 망원경으로 바깥 풍경을 본다. 그리곤 준희의 시야엔 어느 여자가 달리고 있다.
준희는 자신이 바라보던 공원으로 두 사람과 동행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영화배우 길수를 만난다. 아까 준희의 시야에 달리던 여자인 길수는, 준희에게 ‘마음이 맞는’ 사람으로 나아간다. 길수의 재능이 아깝다며 얼른 활동을 재개하라는 박감독의 말에 준희는 스스로 나서 그녀를 대변한다. 자기 인생 자기가 결정해서 사는 거지 대체 뭐가 그렇게 아깝냐는 준희의 일침으로 박감독과 그의 아내는 완전히 퇴장해버린다. 순수하지 못한 과거에 더해 이번엔 타인을 걱정한다는 핑계로 길수를 다시 활동시키려는 박감독의 언행에 준희는 자신이 반문했던 카리스마를 직접 꺼내어 길수를 옹호한다. 이에 길수는 ‘정말 카리스마 있으세요.’라고 말하며 예술을 향한 준희의 순수한 마음을 인정한다. 이전 씬에서 준희의 망원경을 보는 시점으로 길게 줌인하며 그 안에서 길수가 어렴풋이 지나간 것은, 준희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역시나 이후에 만나는 길수의 조카 경우도, 길수와의 동행으로 다시 돌아간 서점에서 마주한 시인 만수도 준희의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경우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 같다며 준희의 계획에 선을 긋는다. 길수와 준희가 함께하는 작품이 기대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그는 결국 촬영에 함께하고서도 후에 준희의 영화가 어땠냐는 질문에 ‘특이한 영화야. 너라면 좋아할 수 있겠다’며, 끝까지 그 선을 지킨다. 서점에서의 만수도 준희의 계획을 순순히 인정해주지 않는다. 아무 이야기나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만수는 이야기를 끄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별로라고 일단락 지어버린다. 그리고선 그는 자신이 떠오른 생각을 말하려는데 마치 수화를 배울 때의 세원을 막듯, 준희가 말을 자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준희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 그녀의 팬이라던 알바생은 만수에게 아까 하려던 이야기를 묻는다. 준희 곁엔 그 누구도 준희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줄 사람이 없다. ‘재밌는데요?’ 라며 받아주는 길수 외에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영화가 완성이 됐다. <소설가의 영화>는 마치 관객들에게 직접 준희의 영화를 보란 듯, 일부를 보여준다. 홈메이드 비디오와 같은 준희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뇌리에는 앞서 준희의 영화에 반문을 제기했던 말들이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묵묵히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준희의 뒷모습을 보며 우린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순수한 예술적 소회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본 영화는 여기서 우리가 한 작가의 예술적 순수성을 옹호하는데에서 끝나도록 두지 않는다. 길수가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앞에서 기다리기 위해 알람까지 맞춘 준희는 그 앞에 없다. 결국 길수는 준희를 만나러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길수가 떠난 텅 빈 영화관 복도에서 과연 유일하게 수화 같은 사람이었던 그녀가 준희에게 고성으로 변하지 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하게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