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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씨네 Jan 24. 2023

<정이> 연상호에게 드리워진 그늘

*본 작품은 영화 <정이>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상호의 명과 암 

    2007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가 개봉했을 때 대중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거대한 스케일과 도전하지 못했던 CG의 발전에 박수를 보냈다. 영화적인 완성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우선시 되기보단, ‘한국영화에서’ 라는 문장이 늘 따라붙기 급급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났다. 이제는 더이상 ‘한국영화에서…’ 라는 수식어는 그 영화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이 아님을 인지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의 [정이]는 유의미한 작품이었는가 하는 물음표가 남는다. 

연상호 감독은 내놓는 작품마다 한국영화에서의 새로운 시도의 장을 연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곤 한다. 이번 [정이]의 경우에도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작품에 대한 큰 기대감과 더불어 한국 영화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도전적인 시각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듯, [부산행]을 시작으로 [반도]와 [염력] 에서 [정이]까지 연상호 감독의 계속되는 도전은 되려 그가 스토리텔러로서 부족한 면모를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 



아쉬운 세계관과 캐릭터들

    [정이]가 작품속에서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비해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는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SF라는 옷을 입었을 뿐, 결국 전쟁영웅이었던 윤정이와 그녀의 뇌를 복제하여 전투로봇을 만드는 연구팀장인 그녀의 딸 윤서현의 모녀지간 사랑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렇다보니 영화 초반에 자막으로 설명되는 쉘터간의 전쟁을 비롯한 세계관의 존재감이 다소 퇴색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자막으로 처리해버린 것일지도) 또 중반부에 이 작품의 전체 세계관이었던 ‘아드리안’과의 전쟁이 끝나간다는 정보가 대사 한줄로 전달되버리면서 그 허무함은 배가 되었다. 정이가 전쟁영웅으로 활약하여 전투로봇을 위한 AI로 활용되는 것이 끝나고 크로노이드 회사의 다른 사업에 이용된다는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설정임에도 그 전달이 확실히 되지 않으면서 위기가 위기로 느껴지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으리라 생각되지만, 90여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이 아쉬운 이유다. 윤정이의 활약이나 어린 서현과 정이의 관계성, 세계관 적인 변화들에 좀 더 많은 할당을 해주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SF영화 속에서 윤리적인 쟁점을 다루는 경우는 아주 빈번하다. 로봇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서, 고도로 진화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 등에 대한 윤리적인 화두를 던지는 작품들은 그러한 쟁정에 대한 상당한 깊이감을 가지고 이 문제들을 다룬다. 또한 그렇게 해야한다고도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이]의 그 태도는 깊이에 아쉬움이 남는다. 정이의 AI가 전투로봇 개발에 쓰이지 않고 다른 방면으로 이용된다는 설정,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자극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성적대상화가 된다는 설정은 반칙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딸 서현이 진행해온 (정이가 수많이 고통받고 죽어야하는)전투로봇 실험 역시 만만치 않은 윤리적인 화두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 상황에서 마치 성적대상화로 이용되는 것이 진정 서현이 정이를 탈출시키려는 트리거로 설정되었다는 점은 정직한 방법이 아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극 중에서 연구 소장을 맡는 것으로 보이는 상훈의 캐릭터가 상당히 얇게 느껴졌다. 상훈이 보여주는 조커형 캐릭터가 상당한 기시감을 주기 때문일 수 있다. 익살스러운 태도와 말투를 보여주며 여유로운 척 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소비가 상당했고, 그런 캐릭터를 진정으로 무서운 빌런으로 살리지 못했다. 농담을 던지고 익살스런 미소를 보낸다고 해서 모두가 조커나 한스 란다 대령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캐릭터였다. 

주인공 서현의 캐릭터 역시 입체적인 모습은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약소한 극중 세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인물이 입체적이 되어가기 위해선 그 인물에게 역경이나 크고작은 사건들이 부여되고, 그 안에서 어떤 행동과 생각의 변화가 찾아오는지를 서서히 보여줘야한다. 그러나 [정이]는 서현에게 그정도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결국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신세처럼 보인다. 



    연상호 감독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감독이다. 그의 시도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기대감을 갖게 했던 감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영화 [아이로봇]이 2004년에 개봉했다. 관객들은 이미 시각적인 신선함만을 원하진 않는다. 이야기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연상호 감독에게 남았다고 생각이 든다. 그가 언제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감독으로 남아있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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