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는 머리가 좋아. 어릴 적에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내가 왼손잡이임을 처음 알게 된 어른들이 굳이 소리 내어 여느 아이들과 다른 내 행동을 확인하고는 서로 머쓱해질까 봐 혼잣말처럼 내게 건네곤 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내 머리가 나빴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왼손잡이여서인지 그냥 내 머리가 괜찮은 편이었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대부분 어른들이 첫 만남에서 내가 왼손잡이임을 한 번씩 상기시켰던 것을 보면 그 시절 왼손잡이 아이는 딱히 부정적인 의미는 없을지라도 유별난 아이로 보이긴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 못하는 친구들이 반에 몇몇 있었다. 나는 다행히 훨씬 어릴 적부터 주변의 가깝지 않은 어른들에 의해 왼손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받아 왔기에 왼손과 오른손은 구별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 친절한 1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오른손 들어봐’에 이손 저손을 무질서하게 올릴 때면 이내 ‘밥 먹는 손 들어봐.’로 정정하여 눈앞에 펼쳐진 양손의 혼돈을 정리하려 하곤 했다. 이럴 때 왼손잡이라 머리가 좋은 나는 오른손을 들게 하려는 선생님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지만 밥 먹는 손을 들으라는 명을 거역하기도 어렵고 나는 왼손으로 밥을 먹는데 오른손이라는 말을 밥 먹는 손이라는 말로 대체한 선생님의 처사에 대한 소극적인 항의도 해야 했기에 왼손을 들곤 했다. 이런 때는 더 힘주어 팔을 쭉 뻗으며 보란 듯이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왼손잡이임을 알게 된 후에도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 오른손을 구별해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라 가르쳤다. 나는 밥 먹는 손은 각자가 밥을 먹는 손일뿐이고 오른손은 오른손인데 저 녀석은 왜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 못하는가 신기해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글씨 연습을 한창 시키던 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왼손에 연필을 쥐고 글씨 연습 숙제를 하려던 내게 어머니가 글씨를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며 나무라셨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왼손으로 연필을 잡아오던 나는 그동안 아무런 간섭이 없던 어머니가 왜 갑자기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으라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 알게 된 일은 그날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과 면담 자리에서 글씨를 오른손으로 써야 하는데 내가 자꾸 왼손으로 쓰려한다는 책망을 들으셨고 어머니는 왼손잡이에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하라는 학교의 강권에 속상해하셨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신입생 시절이 지나니 한동안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일상에서 특별하게 작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들 왼손 오른손 구별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고 왼손잡이라 머리가 좋았던 나도 오른손으로 글씨를 그려가며 학교와 타협하게 되었으니 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리 없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왼손잡이의 불편함들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는 왼손을 쓰는 것이 장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남학생 여학생 구별 없이 모여서 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같은 편을 먹었던 친구들과 짜고 왼손으로 하면 추가 점수를 주자고 주장하여 두배로 점수를 따오는 사기를 치기도 했다.
20대가 되어 군에 입대하며 잊고 살아오던 왼손잡이의 불편을 각성하게 된다. 나의 경우 비교적 양손을 섞어 사용하는 편인데도 사격자세는 오른손잡이 방향으로 도저히 잡히질 않아 왼손 방향으로 사격을 해야 했는데 소총이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왼손 자세로 사격을 하면 총알의 금속 껍데기인 탄피가 내 얼굴로 날아오게 되어 있었다. 훈련을 할 때에는 소총에서 튕겨져 나오는 탄피를 받아 모아주는 탄피 받이를 탄피가 나오는 방향에 부착하고 사격을 해야 하니 얼굴 앞에 거추장스러운 주머니를 달고 총을 쏴야만 했다. 그렇다고 탄피 받이를 부착하지 않으면 총을 쏘는 동안 뜨거워진 금속 탄피가 내 코앞에서 날아다니게 되니 더 난감해질 따름이었다. 오른손잡이였다면 백발백중의 멋진 스나이퍼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아쉬운 일이다.
줄을 맞춰 서서 소총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통일된 동작을 해야 하는 집총 제식 동작은 모든 동작이 다른 사람들과 반대여야 하는 왼손잡이들에게 난감하기만 하다. 신병훈련소를 마치고 퇴소할 때 내가 이렇게 늠름한 군인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집총 제식 동작과 사열을 하게 되는데 나는 퇴소식을 앞둔 연습에서는 줄의 맨 뒤에서 연습에 참여하였지만 정작 퇴소식에는 다른 왼손잡이 몇 명과 함께 연병장 한켠에서 동기들이 사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연습 과정에서부터 열외가 되었다면 편하다고 만세를 부를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땡볕에서 먼지를 마시며 연습을 하고 정작 퇴소식에는 참여하지 못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많은 왼손잡이들이 그렇듯 나도 자라면서 점차 양손잡이로 진화하게 되었는데 어떤 때에 왼손을 쓰고 어떤 때에 오른손을 쓰는지 그 기준은 사실 잘 모르겠다. 예를 들면 젓가락질은 줄곧 왼손으로 해왔고 오른손 젓가락질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위질도 왼손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칼질도 왼손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야구공을 던질 때는 오른손을 사용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베어스의 박철순 투수를 좋아했던 팬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철순 투수가 출전하는 경기 중계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그의 투구폼을 흉내 내곤 하다 보니 오른손 투수의 투구폼이 몸에 익어 버렸는지 모른다. 야구 방망이도 특별한 이유 없이 오른손으로 휘두른다. 지금은 치지 않지만 골프를 칠 때도 오른손 방향이었는데 반면에 테니스나 탁구를 칠 때는 왼손에 라켓을 잡고 휘두르니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역할 분담이다. 수영을 할 때는 특별히 왼손 오른손 구별할 일이 없지만 숨을 쉴 때 다른 사람들 대부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쉬는데 나는 왼쪽으로 숨을 쉰다. 덕분에 옆 레인에서 운동하는 사람과 속도가 비슷하면 숨을 쉴 때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된다. 나는 익숙한 일인데 옆 레인의 그분은 어색할 수도 있다.
일상에서 왼손잡이라고 하여 특별히 차별이나 불편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불편했고 그 불편을 당연한 듯 견뎌내고 있었다고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하철의 개찰구가 그렇고, 전골집에서 제공해주는 국수와 국물을 한꺼번에 떠내기 위한 이가 달려있는 국자가 그렇다. 지금은 쓰는 사람이 없는 말이지만 오른손을 ‘바른손’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던 때에 ‘나는 바르지 못한 손을 쓰는가’라는 어이없는 성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왼손잡이가 글을 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큰 마트나 문구점에 가면 왼손잡이용 가위도 흔히 보인다. 우리 세상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섬세해졌음을 느낀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그 수가 적을 뿐 달리 아무것도 아니기에 특별한 배려나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왼손잡이도 고려한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왼손잡이용 가위나 왼손잡이용 국자를 접하게 되면 오 세상 좋아졌는걸?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달이 어지간히 기운 때 왼손에 채찍을 들고 걷는 동이가 나오는 그 끝 장면이 좋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또 읽던 때가 있었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라고 외치는 패닉의 왼손잡이를 하루 종일 돌려 듣기도 했었다. 사소한 불편을 묵묵히 견뎌내야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왼손잡이라서 좋다. 쿨해 보인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