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일 선물 받은 신상 탁구복에 다들 관심이 많다. 벌써 동호회 회원 여럿이 똑같은 티셔츠를 주문했다. 내 옷걸이가 좋은 것도 한몫하지만, 보드라운 질감에 가볍고 경쾌한 디자인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온라인에서 보던 옷을 내가 입고 탁구장에 나오니 여기저기서 품절된 사이즈에 예약을 넣고 있었다.
기계로 스윙연습을 하고 있는데 코치가 물었다. “회원님! 지금 입은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요?” 선물 받은 신상 유니폼이었다. “S 사이즈요” 다시 말을 건넨다. “동호회 단체티랑 비교하면 사이즈가 어떤가요” “동호회 티요? 브랜드는 다르지만, 비슷해요” 코치도 내 유니폼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며칠 뒤, 땀에 범벅되어 레슨실에서 나오는데 코치가 따라 나왔다. “회원님! 이거 제가 입었던 유니폼인데 혹시 입으시겠어요?” 그녀의 손에는 다소곳이 접힌 상의 2개가 있었다. 제가 결혼 전에는 S사이즈를 입었거든요. 다른 유니폼들은 등판에 이름이 있어서 그렇고, 이건 이름 없는 거예요. 유니폼을 정리하는데 아까워서요. 하나는 약간 실밥이 나갔어요.” 입던 옷을 준다는 게 미안해서인지 작아져서 못 입고 아끼던 옷의 아쉬움인지 그녀는 쑥스러운 듯 말하고 있었다. “네! 코치님이 S 사이즈를 입었다고요?” 순간 아차 이건 아니지 싶었지만 벌써 말은 튀어 나와버렸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최소 XL 사이즈는 되어 보이는데 그녀가 S사이즈를 입었었다면 도대체 체중이 얼마나 불었다는 걸까. “코치님, 감사해요. 이거 입으면 코치님처럼 잘 칠 수 있나요? 예쁜데요. 잘 입을게요.” 초보답게 나의 희망을 주절거리며 그녀의 유니폼을 가방에 넣었다.
코치는 탁구 부수 1부로 등록된 탁구선수 출신이다. 대학 때까지 탁구선수를 했고 지금은 남편인 관장과 함께 탁구장에서 레슨을 한다. 탁구장을 놀이방처럼 뛰어다니며 탁구대 위에 올라가 술래잡기를 하는 장난꾸러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짬 날 때마다 구장에 들려 연습하는 내게 그녀는 말한다. “회원님!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네~ 열심히 해요. 그런데 티 좀 났으면 좋겠어요. 늘 제자리 같아요” 부지런히 애쓰는 내가 눈에 띄었는지, 안쓰러워 응원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나를 생각한 게 느껴졌다. 뜯어진 실밥을 정리하기 위해 수선을 맡겼다. 지난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 때 신유빈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을 대대적으로 수선한 이후 두 번째다.
탁구를 처음 배울 땐 반소매 면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다.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과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땀이 안 났으니까. 지금은 스윙연습만 해도 속옷이 흠뻑 젖는다. 땀이 나면 몸에 감기는 긴 옷은 거추장스럽다. 특히 면티는 땀이 배면 보기 민망해진다. 유니폼은 땀에도 몸에 붙지 않는다. 유니폼은 활동면에서도 중요하지만, 기분 전환에도 한몫한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을 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쉬이 지치기 마련이다. 이런 나에게 잠시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건 유명 명품가방이 아니라 탁구 유니폼이다. 최근 들어 탁구화나 탁구가방도 눈에 들어온다. 코치의 유니폼은 커피를 사랑하는 내게 샷 추가 카페라테 같은 진한 풍미를 전해 줬다. 금방 내린 커피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설렘은 사뿐히 탁구대를 누비는 나를 상상하게 했다. 잠깐의 행복이지만 그녀의 마음이 담긴 유니폼에 내 탁구 사랑을 더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