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승급대회가 열렸다. 탁구 초보인 9부(오름부)에서 8부로 올라갈 수 있는 대회. ‘제주특별자치도 탁구협회장기 전도탁구대회’. 작년에는 승급할 수 있는 탁구대회가 4번 있었지만, 올해는 5월, 6월, 그리고 10월 총 3번이다. 연초에 연간대회 일정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래! 올해 승급할 수 있을 거야. 3번에 기회가 있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 더위가 지나고 뒤늦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초가 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승급을 위해서는 포인트 4점이 필요하다. 나는 ‘0점’이다. 포인트는 승급대회에서 개인전 8강에 들면 1점, 4강은 3점, 준우승 4점, 우승 5점이 배정되는데 나의 최고의 전적은 16강이 전부다. 예선탈락으로 초반에 끝나는 게 많다 보니 16강도 감사한 일이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0점인 내가 4점을 얻기 위해선, 올해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5점)이나 준우승(4점)을 해야 한다. 언감생심. 아무리 좋은 운이 붙는다고 해도 아직 내 실력이 미덥지 못하다. 목표를 8강으로 잡았다. 1점만 받자. 한 계단씩 올라가는 실력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서너 계단도 가뿐히 넘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동호회에서 9부 개인전은 3명이 신청했다. 나를 뺀 두 명은 탁구에 입문한 지 1~2년이 넘은 회원들로 탁구가 처음이지만, 초보라고 하기엔 뛰어난 리듬감을 가진 회원들이다.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동생 회원은 라켓 잡은 손이 안정적인 데다가 공에 파워도 있다. 운동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잘했다는 언니 회원은 공을 보는 감각과 박자감이 좋다. 내가 조금 일찍 탁구에 입문했다는 사실 말고는 이제 그녀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개인전 예선전에서 내가 속한 조는 4명이다. 조1, 2위가 본선 토너먼트에 올라간다. 한 명은 지난 탁구대회 우승자다. 지난 대회가 승급대회였다면 그녀는 이미 8부로 올라가서 나와 같은 조일 리 없겠지만, 현실은 아직 9부다. 딱 봐도 승급 각이다. 다른 한 명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지는 애매한 회원이다. 그녀의 탁구라켓 한쪽 면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평면 러버인데, 다른 쪽 면은 짧은 돌기들이 있는 이질러버다. 고무가 다르기에 공이 라켓에 맞을 때 약간 다르게 날아간다. 거기에다 내가 받기에 불편해하는 빠른 서브가 그녀의 주특기다. 세 번째 상대는 기본자세만 봐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회원이다.
첫 경기 상대는 짧은 돌기가 있는 러버를 장착한 회원이었다. 그녀의 빠른 서브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경기를 진행하다 졌다. 두 번째 상대인 탁구 입문자와의 경기는 비교적 쉽게 이겼다. 마지막으로 지난 대회 우승자와의 경기는 현격한 실력 차가 느껴지게 졌다. 그녀는 서브와 리시브는 물론이고 공격과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나는 허둥대다 랠리도 제대로 못 해보고 3대0으로 완패했다. 깔끔하게 조3위로 예선탈락 했다. 1포인트를 받는 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어려웠다. 예선전이 끝났을 때 머릿속이 멍한 것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나의 탁구 생활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가슴이 탁 막혀왔다.
내 주위로 오름부 언니, 동생이 왔다. 동생은 3승으로 조1위로 예선을 통과했고, 언니는 조2위로 예선을 통과했다고 했다. 부러웠다. 동호회 언니는 본선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패했다. 동생은 16강을 거쳐 8강에 올랐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1점을 그녀는 이미 가졌다. 8강에서도 그녀의 침착함은 빛이 났다. 떨리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공을 봤다. 칠 수 있는 공은 과감하게 쳤고, 어려운 공은 그대로 버티며 계속 공을 넘겼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경기보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 시선이 꽂혔다. 다부진 표정을 하고 한 점씩 득점하고 있었다. 승이다. 4강! 4강에 진출했다. 4강이면 승점 3점이다. 1점이 3개나 되는 3점. 너무 높아서 생각도 못 해본 4강의 문턱에 그녀가 있었다. 이번 한 번만 이기면 결승전 진출, 승패를 떠나 무조건 승급이다. 하지만 4강 상대는 구력이 있는 회원이었고 아직 그녀에겐 버거워 보였다. 오름부 동생은 4강에서 지면서 9부(오름부) 개인전 3위가 되었다. 최고의 성과였다.
복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예선전 경기가 가슴에 남았다. ‘왜 빠른 서브를 못 받고 랠리 한번 못하고 날렸을까?’ 리시브 실수로도 한 세트당 3~4점을 줬다. 11점 게임에서 말도 안 되는 경기운영이다. 무엇이 급하다고 쫓기듯 공을 치며 날렸을까. 상대 라켓을 보기는 했던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경기패턴에 화가 났다. 아! 1점이 이리 어려운가. 대회 결과를 물어보는 직장 후배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후배가 줄넘기 찬양론을 설포 한다. 모든 운동의 기본은 줄넘기라며. 진작에 매일 줄넘기를 했으면 벌써 승급했을 거라며. 그녀의 말에 농담처럼 맞장구를 쳤지만, 집에 돌아와 슬그머니 어딘가 있을 줄넘기를 뒤적였다. 운동화를 신고 손에는 줄넘기를 들고 우레탄이 깔린 아파트 앞 놀이터로 갔다. 줄넘기를 하나씩 넘기며 주문을 외어본다. ‘기브미 1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