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 종목 중 가장 작은 공은 탁구공이다. 탁구는 지름 4cm, 무게 2.7g의 가볍고 작은 공을 상대 탁구대로 넘기며 랠리 하는 경기다. 주로 5판 3선승, 7판 4선승으로 운영되는데 한 세트에 11점을 먼저 가면 이긴다. 쉽게 보면, 공격이나 수비를 11번 잘하면 된다. 상대가 공을 하늘로 날려주거나 네트에 꽂아 줄 수도 있으니 6번 정도 버티면 게임은 순조로울 거 같다. 그런데 나는 공을 저 멀리 날린다. 공을 ‘팍’ 쳐 버리는 게 문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급하게 치거나, 힘 조절을 못 한 결과다. 예상치 못한 공이 오면 다급하게 나도 모르게 팔이 나간다. 작고 앙증맞은 공을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하자 마음먹건만, ‘팍’ 치고 나서 후회해 봐야 이미 날아간 사랑이다. 공식처럼 외운 ‘살살치기’는 온데간데없고 저 멀리 사라지는 공만 보인다.
‘팍’ 치기 패턴을 고치려면 우선 공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이 오는 길을 알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공이 오는 길을 알려면 상대 라켓을 집중해서 살피며 순간 방향 포착이 필요하다. 상대 라켓 방향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면 나와 같은 초보 레벨에서는 거의 오른쪽으로 온다. 엄청난 기술의 속임 액션이 있을 리 없다. 방향을 알아챘으면 얼른 자세를 잡아야 한다. 순발력과 민첩성이 관건이다. 공이 오는 방향으로 오른쪽 다리가 먼저 가서 공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기다림이다. 정확한 타점에서 공을 맞히기 위해서는 라켓을 앞으로 뻗으며 마중을 나가거나, 공에 밀려 뒤로 가서는 안 된다. 최적의 스폿에서 기다렸다는 듯 공과 라켓이 만나면 된다. 만일 이것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엉뚱한 곳에 공이 맞거나 공과 접선도 못 하는 노터치가 발생한다. 문제는, 다 알겠는데 내 팔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고수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마구 공을 친다는 사실이다. 내 팔이지만 참 안타깝다.
지난 주말 안전하게 공 넘기기 연습을 했다. ‘팍’ 치기 패턴 수정을 위해서다.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공이 세게 나가고 살살 치려고 하면 공이 맥없이 떨어졌다. 이 느낌이 아닌데. 살살치라는 말이 약하게 치라는 건 아닌데. 우리말이 참 애매하고도 어렵다. 옆에서 내 스윙 패턴을 유심히 지켜보던 고수가 툭 한마디 건넸다. “무심히 넘겨보세요.” ‘유심히’가 아니고 ‘무심히?’ 일단 그의 말대로 ‘무심히(아무런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없이)’ 공을 넘겼다. 힘을 더 준 것도, 덜 준 것도 아닌 ‘툭’. 공이 편안하게 넘어갔다. 상대 탁구대에 잘 넣고 싶은 마음을 듬뿍 담아 쳤을 때 탁구대 밖으로 나가던 공이 마음을 비우자 포물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들어갔다. “좋아요. 계속 그 느낌으로 공을 보내보세요.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 거니까 공칠 때 마음을 그렇게 가져가 보세요” 흑백요리사의 요리 비법처럼 ‘무심히’를 가슴에 품고 연습을 계속했다.
연습이 끝났다. 오늘의 포인트는 감각이었다. 지금까지 공의 어느 부위를 타구해야 하는지, 라켓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익혔다면, 이번은 그 너머 감각을 더한 연습이었다. 고수는 내가 그 감각을 구현할 수 있게 ‘무심함’이라는 언어 도구를 사용했다. 공을 치기 위해선 공의 몸짓, 회전, 방향, 속도, 무게감 이 모든 것을 섬세히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공을 칠 때 아직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기에 무심한 척 연습을 해보는 거다. 공 넘기기 게임에서 공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의 ‘무심함’이다. 공이 회전을 받아 툭 탁구대에 낮게 떨어질 때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밑에서 사뿐히 받아 올려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관심을 지닌 무심함이다.
나는 내가 치는 공과 나에게 오는 공들이 몸짓으로 말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공과 가까워지고 싶고 공에 잘 보이고 싶다. 공이 어디에 있든 그곳에 내가 있고 싶다. 아직 느낌이 부족하다. 나의 지대한 사랑의 무게에 공이 놀라 도망갈 수 있기에 ‘무심한 척’ 하며 힘을 빼본다. 어깨 힘 빼고 툭 스윙. 여유 있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공 넘기기. ‘무심히’에 꽂힌 날이었다. 무심함과 자연스러움의 뜻은 엄연히 다르지만, 오늘따라 두 어휘가 자연스럽게 동의어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