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메시지가 왔다. 훅 훑어보니 탁구장에서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동생네 상이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다시 보니 고인의 배우자가 바로 동생이다. ‘뭐야? 만우절도 아닌데 이런 메시지를 보내다니’ 장례식장에 가서야 알게 됐다. 아팠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통원치료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 좋아져서 생각보다 빨리 떠났단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암 투병 중이었다는 것을.
얼마 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에게 아이 간식을 전해주러 벨을 눌렀을 때 그녀를 대신해서 문을 열어준 사람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었다. 우리 아이 단짝 친구인 유성이는 아빠와 함께 현관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그들에게 얼른 물건을 건네주고 나온 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 그녀의 남편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부드럽게 인사하던 선한 표정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조문 일정이 나왔다. 일포는 내일이지만 입관이 끝나는 오늘 저녁부터 조문은 가능하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발인 전날을 ‘일포’라고 말하고, 대부분 일포날 조문을 간다. 오늘은 탁구 레슨도 있고, 내일은 시험감독으로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기에 일포가 내일 인 것이 다행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둘러멘 채 탁구장으로 향했다. 초겨울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금요일의 거리는 환했다. 통창으로 안이 훤히 보이는 식당은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났을 그 풍경이 오늘은 낯설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눌렀다. 먹먹했다. 장례식장 풍경이 떠올랐다.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는 분향실, 마음 추스를 시간도 없이 조문객을 맞는 상주,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문객, 장례식장 한 편에서 상주를 위로하는 친지들. 지금 누군가는 남편을, 아빠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겨있을 이 시간, 저 식당 안 사람들은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듯하다. 그들이 알 리 없겠지, 알았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랴. 나 역시 이렇게 탁구 레슨을 받으러 가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남편을 잃은 그녀의 이야기도 그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늦추고 싶었던 아린 작별도 그저 자신만의 이야기다. 서글퍼졌다.
탁구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레슨이 끝나고 탁구장을 나왔다. 평상시 금요일이면 적어도 밤 10시까지는 운동을 했겠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일찍 탁구장을 나왔다. ‘입관 끝났을 텐데 장례식장에 가볼까? 오늘도 조문 가능하다고 했잖아. 아니야, 내일 갈 텐데 시간이 너무 늦었어.’ 낮에 메시지를 받을 때 충격이라면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야 했지만, 마음은 망설이고 있었다. 부고 소식을 들은 지 몇 시간 사이 난 이성적으로 내일 새벽 출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포가 내일이니 일정 끝나고 오후에 가자. 내일 저녁에 쭉 같이 있어야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10시가 가까워지는데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이 아직 이다. 학원에서 늦나? 메시지를 보냈다. ‘민국아 어디야?’ ‘장례식장이야’ 아들은 이미 친구 곁에 있었다. 엄마보다 낫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건 탁구장을 다니면서다. 사실 우리는 훨씬 전부터 알아야만 됐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아파트 놀이터에서 같이 놀며 이집저집 다니며 밥을 챙겨 먹는 친구들이었다. 직장맘이어서 우리 아이가 평상시에 다른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다니는 게 미안해 주말이면 과자를 굽거나 떡볶이 같은 간식을 만들어 집에 오는 아이들을 챙겨주곤 했었다. 그 아이 중 한 명이 그녀의 아이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들끼리 교류하며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학원정보도 공유하지만 나는 직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다. 엄마들 모임도 없고, 연락을 주고받는 엄마도 없었다. 내가 탁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탁구장에서 나를 아는 척하며 먼저 말을 건넨 건 그녀였다. “안녕하세요. 저 유성이 엄마예요. 민국이 엄마가 탁구장을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누구실까 궁금해서 유심히 살펴봤어요.” 그녀의 예상대로 새로운 회원 중에 딱 맞는 게 바로 나였단다.
그녀는 백두부다. 제주에서는 탁구 실력을 기준으로 초보부터 고수까지 오름부, 금강부, 한라부, 백두부로 나뉜다. 단연 여성회원 중 원탑이다. 오름부인 나는 늘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면, “네가 정말 부러워, 탁구도 잘 치지, 예쁘지, 44사이즈에 날씬한데 근육도 탄탄하지, 애들도 착하고 예쁘지!”라며, 늘 부러움 종합 선물세트를 그녀에게 건넸다. 조막만 한 얼굴에 서글서글한 이목구비,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격 좋은 그녀가 정말이지 내가 보기에 부러움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제일 닮고 싶은 건 간결하고 멋진 스윙의 탁구 실력이었다.
다음날 시험감독이 끝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무언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식당 한쪽 자리를 지키며 분주히 조문객을 맞이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을 뿐이다. 그렇다 할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늘진 얼굴에 눈물까지 말라버려 휑한 그녀를 마주하니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한계가 있는 거 같았다. 내가 그녀가 아니기에, 그녀일 수 없기에 위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2주가 흘렀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는 그녀를 아파트 분수대 앞에서 마주했을 때, 그녀의 큰 눈은 얼굴에 진 그늘 때문인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무슨 말을 건넬지도 알 수 없다. 기껏 내가 그녀를 위해 한 일이라곤 유명 쇼핑몰에서 부른 냉동 갈비탕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우리 아이도 잘 먹었으니 아마 그녀에게도 요긴하게 쓰일 테지. 그녀에게 이번 겨울은 유독 더 춥고 쓸쓸할 것만 같다.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서 단단한 근육만큼 마음도 단단하기를 바라본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어떤 불운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햇살이 파릇한 봄날에도, 한여름 잠 못 드는 열대야에도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올 수 있다. 그녀에게 이 겨울은 하룻밤 사이에 온 겨울일 테지. 그녀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힘겨운 날에도 지금처럼 굳건히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 ‘Keep Going’처럼 그래도 계속 나아가기를. 오늘 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님처럼 아름답게 걸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