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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Dec 28. 2024

허수아비가 탁구를 치면?

2025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도 변함없이 내년 연간계획을 세울 시즌이 왔다. 계획을 위해 노트북 폴더를 뒤적거렸다. 작년, 재작년에는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역시나 탁구 이야기가 다이어리에 가득하다. ‘멋지게 탁구치기’, ‘탁구 8부 되기’, ‘탁구 초보 탈출하기’, ‘몸이 말하는 탁구’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모두 탁구 초보 탈출이 연간계획에 있었다. 어쩌나, 2025년 목표도 탁구 초보 탈출인 것을.


허수아비가 탁구를 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나를 보면 된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고수가 툭 한 마디 던진다. “회원님 탁구는 허수아비 타법이에요.”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봤는지 그는 수습하려 했지만 난 그의 직관적이고 단순 명료한 표현에 놀랐을 뿐이다.


탁구를 할 때 팔꿈치를 축으로 팔을 접으면서 스윙이 나가야 하는데, 나는 뻣뻣한 각목처럼 팔이 통째로 움직인다. 허수아비가 팔을 접지 못하고 그대로 라켓을 잡은 모양새다. 고수들은 초보가 탁구치는 걸 한 번 쓱 보기만해도 문제점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챈다. 표현만 달랐을 뿐 나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고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요즘은 특히 팔을 접어보려 계속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팔꿈치를 축으로 팔을 못 접는다는 게 내가 봐도 신기하다. 빈 스윙으로 팔을 접어보라고 하면 제법 하는데, 공만 오면 팔이 통으로 나간다. 거기에 다리까지 움직이지 않으니 ‘허수아비’ 맞다. 내가 다른 사람과 신체 구조가 다른 것인지, 머리 구조가 다른 것인지. 팔을 다쳐서 깁스한 적도 없는데, 탁구 칠 때는 투명 깁스를 한 듯 반듯하게 움직인다. 나를 지켜보는 회원들 역시 미스터리라고 한다.


초보 그룹 ‘오름부’가 3명인 시절이 있었다. 나를 뺀 두 명은 올해 5월과 6월에 8부로 승급해 ‘금강부’ 그룹으로 올라갔다. 새로운 초보 회원들이 오름부로 들어왔고, 나는 2025년도 굳건히 오름부장 자리를 지키게 됐다. 부장의 직위에서 내려올 날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했던가. 나의 ‘그날’은 언제 오는가? 허수아비 들판에도 그날은 오는가?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움직임이 느려 다리가 못 가고, 팔은 허수아비처럼 휘두르고, 박자·리듬 없고. 아직까지도 그렇다는 것이 슬픈 사실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매해 반복해 적는 게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아 이번 계획은 다르게 적어보기로 했다.


‘공이 올 때 다리가 반응한다. 팔을 잘 접어서 앞으로 보낸다. 상대 라켓에 공이 맞을 때 난 박자 잡으며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2025년의 모습이다. 2025년 목표에 당당하게 초보 탈출이라 적고 ‘몸이 기억하는 탁구’를 써본다. ‘주중 최소 3번 탁구장 가기, 줄넘기 300개 하기, 주말 운동장 달리기, 스쿼트 매일 3세트씩 하기, 유튜브 탁구 영상보며 공부하기, 거울 보며 포핸드 연습하기’ 2025년 초보 그룹 탈출을 위한 세부계획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내용도 작년, 재작년 계획에 다 있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으니. 나의 기다림의 씨앗이 기적처럼 싹 틔우기를 바라며, 2025년 탁구계획은 이 정도 적어 본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즐기며 배우는, 그리고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복 탁구 지속하기’. 2025년도도 쭉! 나의 탁구 애정전선은 이상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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