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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Jul 29. 2023

부드러운 말로 평화를 주기, 부부소통

당신은 말습관만 바꾸면 나무랄데가 없는 사람이야.

자유의지만큼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방향을 잡고 지속성을 가진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도 그를 끌고 갈수가 없다. 생활적인 면에서 보자면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그랬고 내 결혼생활의 화두인 ‘바윗돌같이 완고한 남편과 어떻게 하면 잘 소통하고 지낼 것인가?’에 대한 해법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손가락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버럭 성질을 부렸다.

"요즘 갑자기 검지손가락 마디가 아프네?"

나이가 들었나...아프지 않던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전 날에도 정형외과에 어깨통증치료를 받으러 갔었다. 아픈 중년의 마누라를 대하는 게 부담됐는지 설겆이를 하다 짜증났는지 남편은 대뜸 소리를 높였다.


"아 그럼 정형외과 갔을 때 얘기를 하지?"

남편은 목소리가 큰 편이다. 가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건지 그냥 말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 날은 왠지 기분이 상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쌓여온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가벼운 대화로 풀어질 단계를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어떤 말로 다가가야 할지 요즘 많이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가정이 심각한 위기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 사람과 나이들어 잘 지내는 건 힘들겠어.’ 라고 스스로 포기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사람도 나랑 사느라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고개를 들면서 최근에는 남편을 보는 내 시각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이 생각보다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왜냐하면 단정적이고 내뱉는 듯한 크고 거친 표현 속에 본마음을 많이 숨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취중진담이라고 술마시면 나오는 본래의 마음을 술이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감정으로 치부하는 남편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보니 나약한 감정이나 불안한 감정은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고를 가진 사람이 나의 남편이었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라 남편을 긁어대기도 했는데, 요즘은 자기 마음도 모르고 살아오느라 남편도 참 힘들었겠다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주변의 친구들 얘기로 ‘나이드니 남편이 안스러울 때가 더 많다’고 하더니 이제 나도 그 시기가 된 것인가.  



“지난 번에 술마시고 얘기하려고 했던 거 그거 뭐예요? 좀 궁금한데…”

물론 ‘자신은 원래 이렇다. 목소리도 크고 악의없이 하는 말인데 왜 그걸 공격적으로 듣느냐’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배우자를 고를 때 나는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남편을 원했었다. 그런 나의 바람에 꼭 들어맞는 남편은 내게 충실하게 가장의 책무를 다했고, 때로는 완고하고 고집스럽게 내 의견을 꺾어놓았으며, 때로는  내 마음을 후벼파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곤 했다. 하지만 나도 만만찮게 시비를 잘 가리는 성격인 탓에 아닌 것에 대해서는 꼭 말로 가려내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늘 불똥이 튀었다. 작은 대화에서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교육관에서, 경제관념에서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상대방과의 협력과 공감대인데, 우리는 이 두가지에서 애초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동안의 삶에서 부딪힘이 많은 건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나는 바윗돌 같은 남편을 살살살 움직여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함께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당신과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를 전제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힘을 많이 주면 덜커덕 굴러가서 나를 짓눌러버릴 것이고, 힘을 어지간히 쓰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남편과 이야기하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부탁’이라는 용어를 썼다.



“여보, 나는 당신하고 앞으로 잘 지내고 싶어. 그러니까 나한테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좋은 단어를 써서 말을 해 줘. 당신한테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야”
“당신은 말습관만 바꾸면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말을 좀 부드럽게 해 줘. 부탁이야.”




남들이 들으면 내가 마음이 넓어서 그러는 줄 알겠지만, 나는 나대로 잘 살아가기 위해 하는 선택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지금은 어떨까? 화를 내지 않고 말을 들어주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폰 너머로 느껴진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톡을 보냈다. “여보~ 어제 화내지 않고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마워요. 사탕 몇개가 아니라 사탕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에요. 여보랑 대화를 하면서 내가 조급해지지 않으며 안전하다고 느꼈던 대화였어요."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기 위해 아이센 교수팀은 코미디 영화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표시라고 하면서 캔디 몇 개를 주어도 참가자들은 기분이 좋아졌고 그렇게 미세하게 좋아진 기분의 차이는 엄청났다.

‘회복탄력성’에 나오는 말이다.

사탕바구니를 받은 나의 느낌을 남편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차분히 낮은 톤으로”

남편의 톡을 보고 나는 감사와 물개박수 이모티콘을 마구 날려보냈다.



어쩌면 그 많은 싸움도 단순한 진리 한 방에 끝날 것인지도 몰랐다. “언제나 부드러운 말로 평화를 주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말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닿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남편과의 그 많은 싸움과 화해 속에 이십 여년 가까이 가버렸지만 그 시간들이 그냥 없어진 건 아닐 것이다. 오해가 이해로 변하는 시간의 놀라움 속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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