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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연 Oct 08. 2023

엄마의 재능

올해 추석에는 시댁을 가지 않고 친정을 다녀왔다. 명절 당일날 친정을 간 것은 결혼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들어서는 문간에서 “엄마~~~”하며 하이톤 목소리를 한껏 질러본다. 재작년에 팔순을 지낸 아버지와 올해로 일흔다섯이 되신 엄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겨주신다. 엄마 아빠의 웃음을 볼 때면 나는 여전히 내가 애기엄마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자식 나이가 벌써 오십인데 부모 눈에는 나이 든 자식도 어린애다.  



평생 종갓집 큰며느리의 습이 배이신 엄마는 이번에도 갖가지 음식들을 많이도 장만하셨다. 큰 무쇠솥에 한가득 솥밥, 소고기와 마른오징어, 황태, 홍합, 무 등등 야채와 고기가 가득 들어간 경상도식 탕국이 들통 한가득 김을 내뿜는다. 나물은 또 몇 가지야? 참기름 향이 솔솔 나오는 맛깔스러운 빛깔, 시금치, 오이볶음,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 등 손맛을 자랑하는 엄마표 나물시리즈가 환상이다. 거기에 식혜, 생선, 고기 등등. 그 외에 갈비찜, 더덕무침, 연근조림, 멸치볶음 등 밑반찬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요즘에는 명절 음식은 그나마 줄였다고 한다. 전이랑 고기는 올케들이 준비해 왔다고 하는데도 자식 며느리 줄 것들을 챙기느라 음식양은 더 늘어난 것 같다. 묵은지만 먹으면 질린다고 총각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깻잎장아찌 등등 새 김치들이 줄줄이 대기 중. 엄마의 음식을 보면 나는 박수부대가 된다. 음식에 재능이 있는 엄마를 둔 건 자식에게 축복이다. 내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내 엄마음식이 좋다. 









“아유~엄마, 또 이렇게 많이 하셨네? 뭐 하려고 왜 이렇게 많이 해?”라고 하면 

엄마는 “너네들이 이렇게 잘 먹는데 해~~ 야지 어떡하냐…” 한다.




"내가 음식장사를 해서 돈을 좀 벌었어야 하는 건데.... 그걸 안 해본 게 아깝다." 언젠가 엄마한테 지금까지 살면서 뭐가 제일 후회되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나에게 하신 말이다. 엄마는 그 솜씨로 장사를 했으면 큰돈을 벌었을 거라고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재료 아끼지 않고 마구 퍼주느라 얼마 남지도 않았을 것 같다. 






오빠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면 엄마 손은 또 바빠진다. 아이스박스에 김치며 반찬이며 차례음식까지 차곡차곡 담고, 안 들어가는 것은 검은 봉지와 쇼핑백에 담아서 그 옆에 단단히 붙여 놓는다. 행여나 까먹고 갈세라. 올해는 아예 간 마늘 세 봉지씩을 세 집 분량으로 나눠서 얼려놓으셨다. 급기야 엄마는 3년 된 멸치 액젓까지 들고 오시며 “오메나~~ 이걸 까먹을 뻔했다, 매실도 있는데 가져갈래?”하고 하하하 웃으며 허리를 주욱 펴신다. 뒷짐을 지고 웃고 계신 아버지는 ‘허허~’ 하시며 끝도 없이 나오는 엄마의 음식들에 눈이 둥그레지신다. 매번 있는 일인데 아버지는 매번 신기해하며 감탄을 하신다. 남편은 제사비도 많이 안 드리면서 이렇게나 많이 얻어가도 되는 거냐고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도 싱글벙글이다. 




“내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이제는 음식 하는 게 싫어질 때가 있다, 글쎄.”


이 말을 듣는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찰지게 음식준비는 왜 하는데... 조만간 못해줄지도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는 걸까. 아무튼 엄마는 할 수 있을 때 해준다고 하면서 이번에도 거하게 냉장고를 털어내셨다.



 “추석이 가까워지니까 걱정이 슬금슬금 되더니, 이번에도 잘 지나갔네~” 



엄마는 올해도 그렇게 자식 셋의 아이스박스며, 카트며, 바구니를 갖가지 먹거리들로 알뜰하게 채웠다. 올해는 내 생일날 해 먹으라고 한우국거리며 불고기감까지 내어놓으신다. 피곤한 딸이 생각나서 하나 더 샀다고 흑마늘 한통도 꺼내오셨다. 손이 큰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늘 돈을 쪼개 쓰는 습관이 있는데 왠지 이번에는 고기며 해물이며 찻잎이며 "남들 다 사길래 나도 막 따라 샀다. 에이 안 쓰고 남겨두면 뭐 해…. 확 써버려~~” 엄마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하는데 나는 맘이 짠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돈 좀 많았으면 싶다. 확 써버리게.






음식을 마구잡이로 해 먹는 어지간히 철이 없는 나는 그동안 엄마의 음식을 잘도 받아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음식을 가지고 오면서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해마다 조금씩 작아지는 듯한 엄마 키를 보면, 늙을 것 같지 않은 엄마가 할머니가 다 된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보고 “너네가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데, 내가 안 늙을 수가 있냐.” 그러기도 하고 "우리 딸이 내 나이가 되면 나는 세상에 없고 말겠네." 하며 유쾌한 엄마는 깔깔 웃는다.  



자식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야 “아이고 이제 진짜로 끝났다” 하시며 엄마는 그제야 자리를 펴고 노곤한 몸을 돌볼 것이다. 그래도 내가 집에 도착해서 전화를 할 때까지는 엄마는 일이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한다. “엄마, 냉장고에 싹 다 들어갔어." 그러라고 준 거면서 엄마는 또 신기해하신다. “아! 그 많은 게 다 들어갔니? 당분간 엄마 해준 거로 잘 먹고 잘 지내라.” 그러면서 나물은, 고기는, 김치는… 어쩌고 저쩌고 가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둥근 보름달이 보인다. 우리 엄마 허리가 굽지 않기를. 엄마가 건강하기를 달을 보며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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